[역경의 열매] 박수진 (1) “전 지구의 76% 바닷길 통해 복음을 전파하라”

입력 2013-10-29 16:59


‘쾅, 쾅, 쾅.’ 발칸포의 일종인 케리바공 소리가 바다를 뒤흔들었다. 해적들이었다. 이들은 비행기를 잡는다는 발칸포를 갖고 다니면서 지나는 배를 위협했다. ‘올 게 왔구나’ 생각했다. 곧이어 배의 곳곳에서 군화소리가 들렸다. 순간 해적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차림새가 좀 이상했다. 총을 들고 있긴 했지만 멀쩡하고 깨끗했다. 좀 어색했다. 그들 중 하나가 총을 들이대며 물었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냐. 이 배는 무슨 배냐.”

당시만 해도 우리는 선교하는 배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서둘러 둘러댔다. “젊은 사람들을 태워서 교육하는 배예요.”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곤 한 걸음 더 다가오며 말했다. “이 배에는 선원 말고도 여성과 어린 아이들도 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냐”며 캐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해적과 똑같이 변장한 말레이시아 해양경찰이었다. 자신들은 해적선을 쫓고 있는데 사흘 전부터 우리 배를 발견하고 미행했다고 한다. 배에 아이와 여성들도 많이 타고 있어서 수상쩍었다는 것이다. 경찰 책임자는 “당신들 이렇게 가면 큰일 난다. 그냥 가다간 해적의 밥이 된다”면서 자신들이 보호해 주겠노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선교선(船), 한나호는 말레이시아에서 필리핀 해역까지 경찰의 든든한 칸보이를 받으며 안전하게 도착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나는 그때 하나님이 반드시 돕는다고 확신했다.

1988년 시작된 아시아 최초의 선교선 한나호는 현재 순항 중이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팔라우 한국 등 6개국 출신 50여명의 선원과 단기선교사들이 탑승해 의료봉사와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사업가, 회사원, 학생, 신학생, 의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한 번 배에 오르면 2∼3년 동안 봉사활동을 펼친다.

각자의 전공과 경험을 되살려 기관실과 진료실, 학교, 세탁실, 취사실 등에 배치돼 ‘선상 공동체’를 이루면서 문화 전도사로 활약한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 변화되고 있다.

길이 73.6m, 폭 12.6m, 순항속도 10노트인 한나호는 정박하는 곳마다 열매를 맺었다. 팔라우공화국에서는 6개월 동안 650명이 예수를 영접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40명의 현지 선교사를 양성해 파송했고,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얍 등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특히 지난 20년 동안 배를 탔던 1000여명의 봉사자들 중엔 목회자와 선교사가 된 사람들이 많다.

현대 선교에서 배를 이용하는 것은 구식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의 76%가 바다로 구성돼 있고 지구촌의 4분의 3은 선박을 이용해 어디든 갈 수 있다. 시대는 변했지만 배는 여전히 유용하다. 한나호는 단순히 의료선이나 선교선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 배는 기도와 예배가 있는 신앙훈련소이자 현지 선교사를 파송하는 선교단체, 그리고 육체적 고통을 겪는 현지인을 위한 병원이다.

그동안 한나호는 수많은 일을 겪었다. 태풍과 해적의 위험, 공동생활로 인한 내부적 갈등, 지도력의 문제, 기관의 고장, 선원 선교사들의 부족 등으로 아픔과 상처를 겪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더 강인한 주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한 특수훈련 과정이었다.

다음 달이면 한나호가 한국에 입항한다. 그리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아프리카를 위한 항해를 시작하려고 한다. 주님의 도우심과 기도가 필요하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박수진 대표 약력=1953년 서울 출생, 합동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 Div.), 미국 리버티신학교 신학석사(Th. M.), 국제오엠선교회 둘로스호 승선, 한나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