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상 교수, 인천시민인문축제서 '설국열차와 인문학' 강연

입력 2013-10-29 16:12

[쿠키 사회]“인문학은 현실에 천착해 있지만, 어떤 편에 서서 통치나 저항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등에(쇠파리)처럼 일체의 권력을 문제 삼아 새로운 상상을 하는 통로이자 통로를 만드는 산파입니다.”

유범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행정학과) 교수는 29일 인천시민인문축제에서 ‘설국열차와 인문학’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지친 나를 위로하는 힐링의 인문학에서 나를 지치게 만든 본질을 찾는 필링(peeling)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유 교수는 “인간이 만든 재앙으로 인해 설국이 된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끊임없이 달리는 설국열차뿐이지만 이 열차는 차별의 공간”이라며 “이상한 놈 ‘송강호’가 나타나 질서유지나 체제전복이 아닌 기차 밖으로 가는 통로를 만들려는 시도를 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유 교수의 이같은 견해는 2006년 전국 80개 인문대학장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7년 서울의 7개 주요 대학에서 폐강된 교양 강의 158개 중 70%가 넘는 114개가 인문 사회계열 강의였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소크라테스가 인문학의 원형”이라고 전제, “그는 현자를 만나 소등에 착 달라붙은 등에처럼 끊임없이 집요하게 묻고 비판하면서 물어뜯는 방식으로 현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까지 질문을 던진 ‘이상한 놈’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한국사회는 가능한 빨리 ‘필링의 인문학’이라는 ‘이상한 놈’과 전면적으로 대면해 CEO인문학, 도서관 인문학, 노숙인 인문학, 자본의 인문학, 개인치료 인문학, 교양교육의 인문학에서 벗어나 상식·지식·질서·진리·권력의 이면을 문제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