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유승관 목사]밧모섬 ‘계시의 동굴’에 엎드린 사도 요한

입력 2013-10-29 15:36

95세 노종의 영성과 사랑이 주는 교훈 (하)

선교학 박사로 전 사랑의교회 선교담당 책임자였던 유승관 목사가 최근 에게해의 밧모 섬을 방문하고 돌아와 국민일보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유 목사는 사랑의교회를 창립한 고 옥한흠 목사와 포항제철 설립자 고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을 비고, 고찰한 ‘두 광인 이야기’(생명의 말씀사)를 펴냈다. <편집자 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1~13)

‘에게 해(海)의 예루살렘’

밧모(Patmos)섬은 ‘에게(Aege)해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거룩한 섬이다. 남북이 16km, 동서가 약 10Km이고 중간 부분은 잘룩하여 불과 1Km정도 밖에 안 된다. 해안의 굴곡이 심하여 전체 해안선의 둘레는 약 60Km에 달한다. 면적은 우리나라 영종도의 크기와 거의 같은 34㎢이다. 이곳에는 약 2천 6백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이 중에 반 이상은 섬 중앙 산언덕에 있는 호라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백색을 하고 있어서 에게해의 짙푸른 바다와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루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밧모섬은 그리스에 속해 있는 섬이지만 터키 본토 해안에서는 불과 60Km 정도밖에 안 떨어졌고 아테네에서는 250Km나 떨어져 있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그리스 아테네의 피레우스 항구에서 배로 가는 방법과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사모스섬까지 가서 그곳에서 배로 가는 방법이 있고, 터키 에베소의 쿠사다시 항구에서 배로 가는 방법이 있다. 필자는 아테네에서 자정 무렵, 배에 올라 7시간 반 가까이 밤바다를 가른 후 이튿날 아침 일찍 스카라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비의 카페테리아 의자에 깊숙이 앉아 비몽사몽간에 밤을 새워 온 탓인지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러니 그 당시 95세의 노구를 이끌고 거센 풍랑에 일엽편주와 같은 배에 실려 이곳까지 유배를 온 요한 사도는 과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상상을 하니 호사스러운 생각에 두 주먹과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나 하선을 했다.

로마제국 시대에 밧모섬은 정치, 종교의 중범자들 특히 기독교도들의 유배지였는데,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죽음의 섬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섬에는 물이 나오지 않고 섬 전체가 돌산으로 이루어져서 죄인들로 하여금 바위를 깨서 돌을 만드는 채석장으로 활용하였다. 예수의 제자 중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은 사도 요한은 도미시안(Domitian) 황제 때(AD 95년 경) 이 섬에 유배를 와서 약 18개월 간(혹자는 약 3년이라고 주장) 살다가 도미시안 황제가 죽고 기독교의 탄압이 완화된 후 석방되어 에베소로 귀향하였다는 설도 있다.

밧모섬 주민의 대부분이 살고 있는 호라 마을 위의 산 정상에는 요한 수도원이 있다. 요한 수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성(城)으로 밧모섬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원래 이 장소는 그리스의 여신 아데미(Artemis) 신전이 있던 곳이었는데, 1088년 수도자 크리스토둘로스(Christodoulos)가 사도 요한을 기념하여 수도원을 세웠고, 이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요새화한 것이다. 요한 수도원에는 값진 보물과 희귀한 성경이 많은데, 특별히 AD500년대에 기록한 마가복음은 매 장의 첫 글자를 순금으로 썼고, 나머지는 은으로 썼다. 또한 해상무역으로 큰돈을 번 상인들이 안전 항해를 기원하며 많은 보물을 기증하여 엄청난 보물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계시록의 책을 펼쳐들고 있는 요한의 초상화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화이다.

‘계시의 동굴’에 엎드린 사도 요한

밧모섬의 산 중턱에는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계시의 동굴(The Holy Cave of the Apocalypse)’이 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낮에는 채석공으로 돌을 깨는 일에 동원되었다고 하며 이 동굴에서 기도 중에 계시를 받아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눈이 어두워 그의 제자인 브로고로(Prochoros) 집사가 계시의 내용을 대서했다고 하는데, 동굴 입구에는 요한의 계시의 내용을 대서하는 브로고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도행전 6장 5절에도 나오지만 이 브로고로 집사는 예루살렘교회의 초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로마제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 기독교가 그 어둡고 암울한 시대를 보내고 있을 때, 사도 요한은 이곳 망망대해의 고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밧모섬에 끌려와 유배생활을 했다. 95세의 노구를 이끌고 낮에는 중노동을 하고 밤과 새벽에는 동굴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은 그런 당신의 종 요한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의 말씀과 함께 장차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심으로써 인류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1~3)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 동굴의 천정이 크게 삼등분으로 갈라졌다고 하는데 육중한 바위에 갈라진 세 갈래의 굵은 선을 바라보며 삼위일체를 떠올려 보았다. 요한이 머리를 두고 잤다는 바위 전면 하단의 움푹 파진 공간과 그 우측 벽면 1미터 높이에 요한이 기도하고 일어설 때마다 힘이 없어 잡고 일어나 손자국으로 깊게 파였다는 홈을 보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노종의 간절한 기도의 사랑의 숨결이 가까이 와 닿는 듯했다.

사도 요한의 삶과 사랑이 주는 교훈

필자가 ‘계시의 동굴’을 나와 언덕을 내려오는데 문득 고(故) 옥한흠 목사가 떠올랐다. 옥 목사의 영어 이름이 요한(John)이라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그의 설교가 생각났다. 2007년 7월 8일, “한국교회 부흥 백주년기념대회’에서 옥 목사는 요한계시록 3장 1~3절 말씀을 본문으로 “주여 살려주옵소서!”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그는 사데 교회에 향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느니라!”고 외치신 주님의 책망을 들어 피를 토하듯 한국 교회의 진정한 회개와 변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가 없는 한국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주여, 통회하고 자복하는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옥 목사는 사데 교회를 보면서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며 이렇게 외쳤다. “사데교회 사자에게 편지하라며, 일곱별을 손에 주신 예수님께서 행위가 죽은 교회의 책임을 지도자에게 묻고 질책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됩니까?... 평양대부흥의 진정한 기념은 복음을 변질시킨 죄를 놓고 가슴을 치는 목회자들의 회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시기로”(계 1:9~11)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요한(John Oak) 목사를 통해 한국교회에 들려준 설교나 고도(孤島) 밧모섬에서 요한 사도를 통해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준 계시록의 말씀이나 모두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으로부터 전해진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시간을 유한된 인간의 능력으로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속히’ 일어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그 나라와 의를 갈망하는 모든 믿는 자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소망과 환희의 메시지인 것이다. “마라나타(Maranatha)!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유승관 목사(선교 전략가, SIM International Consultant, <두 광인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