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무총리 담화가 아쉬운 이유
입력 2013-10-28 18:51
정홍원 국무총리의 28일 대국민 담화는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우선 외압 및 축소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와 관련해 실체와 원인을 밝혀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정쟁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정부의 해결 의지를 천명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대통령이 후임 검찰총장을 내정한 다음날 총리가 철저한 수사를 국민과 야당에 다짐한 것은 어느 정도 진정성이 담보된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 총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정쟁 중단과 경제·민생 입법이다. 그는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문제로 더 이상 혼란이 계속된다면 결코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했다. 국민에게는 믿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현재의 여야 분위기라면 이번 주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면 국회가 공전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예산안을 심의하고 경제·민생 입법을 본격화할 시점에 국회가 겉돌면 정부가 국정을 운영하는데 큰 부담이 될 것이다. 행정부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국민과 정치권에 협조를 당부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처럼 정 총리 담화가 내용상 공감은 가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작금의 정쟁이 총리 담화 정도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담화에 대해 “국가기관들이 총체적으로 불법 대선개입에 나서고 수사 외압, 검찰총장·수사팀장 찍어내기 등 정국 파탄으로 치닫는 지금 총리의 안이한 시국 인식은 한심한 수준”이라며 “정국 호도용 물타기 담화”라고 혹평했다.
야당은 지금 청와대를 향해 총공격에 나선 형국이다. 지난 대선을 국가기관이 개입한 사실상의 ‘부정선거’로 규정하면서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박 대통령은 정쟁에서 한발 비켜나 있겠다는 듯 침묵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전투구 정쟁에 발을 들여놓는 대신 국정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안이해 보인다.
청와대와 사전 조율했을 게 분명한 총리 담화를 들여다보면 박 대통령은 사법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적어도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국정원 사건 등과 관련해 일절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그럴 경우 야당의 대여 공세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박 대통령과 집권세력한테 크나큰 불행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은 이명박정부 때의 일이다. 하지만 수사 외압 및 축소 의혹은 현 정부 책임이다. 박 대통령이 엄정한 수사를 국민에게 약속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