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은 50대 중반의 운전면허시험관이 도로교통공단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무효 확인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여성 응시자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긴장을 풀어줄 의도였으며, 다른 중앙부처 공무원의 성범죄에 비해 비위 수준이 중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공무원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과 더불어 법원의 온정주의 판결 논란이 일었다.
성희롱 처벌에는 네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직장 밖 성희롱’은 정의조차 없다.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필요에 따라 특별법 위주로 만들다 보니 입법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직장 내 성희롱’을, 여성발전기본법은 국가기관 등에서 발생하는 성희롱만을 금지한다. ‘직장 밖 성희롱’의 경우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등이 적용된다.
둘째, 성희롱의 범위에 육체적인 행위도 포함된다. 고용노동부의 성희롱 판단기준 예시에 의하면 입맞춤, 포옹, 뒤에서 껴안기, 가슴·엉덩이 등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가 포함된다. 이 같은 기준은 오히려 신체접촉 성희롱을 경시하는 잘못된 사회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 셋째, 육체적 성희롱은 단순추행으로 간주되어 처벌이 어렵다. 형법상 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 준강제추행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황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추행도 업무상 위계 또는 위력을 증명해야 한다.
넷째, 성희롱 판단기준이 애매하다.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의 입장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의 입증책임은 무겁다. 법정에서 자신의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에 대한 진술을 해야 하고 채용탈락 감봉 등 고용상 불이익과의 인과관계까지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육체적 성희롱을 강력히 처벌한다. 성적접촉(sexual contact)을 성범죄로 간주하고 별도의 형사 처벌조항을 둔다. 연방법은 미국 영해 및 영토 등 연방 사법권이 적용되는 범위로 제한되고, 성적접촉은 적용대상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상대방의 허락 없이 고의적인 성적접촉을 하면 최대 징역 2년형에 처해진다.
워싱턴DC 형법은 5단계의 성범죄 중 하위 3단계가 성적접촉 관련 조항이다. 가장 경미한 5단계는 국내법상 신체접촉 성희롱의 개념과 유사하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적 접촉을 하는 경우 최대 180일 이하의 징역 및 1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만약 피해자가 거절 또는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중범죄인 4단계가 적용될 수 있다. 최대 징역 5년 및 벌금 5만 달러이다.
캘리포니아주 형법은 당사자 간의 관계에 따라 성적접촉을 5개 유형으로 구분한다. 불법감금 또는 의사 등 의료진의 성희롱은 최대 징역 4년 및 벌금 1만 달러형에 처한다.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경우 최대 징역 6개월과 벌금 2000달러이다. 직장 내 육체적 성희롱은 가중처벌된다.
육체적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말과 행동이 모두 포함되는 ‘성적 언동(言動)’의 개념에서 행위 부분을 분리해서 형사처벌해야 한다. 신체접촉 성희롱을 형법상 성범죄의 첫 단계로 분류해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나아가 보다 심각한 성범죄로 진행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억제효과도 있다. 성범죄에 대한 법원의 온정주의 판결을 지양하고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하기 위한 제도정비가 필요한 때이다.
안준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미국 변호사
[기고-안준성] 신체접촉 성희롱 형사처벌해야
입력 2013-10-28 18:52 수정 2013-10-29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