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세상 이중생활… 가상 인물 가면 쓴 ‘OAE족’ 는다
입력 2013-10-29 04:59
회사원 조모(32)씨의 페이스북은 단정하다. 프로필에는 증명사진과 함께 경력, 취미, 존경하는 인물 등이 적혀 있다. 간간이 올리는 게시물로 보면 페이스북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여기서 살다시피 하는 ‘헤비 유저’이고, 이 계정은 그의 ‘가면’일 뿐이다.
조씨의 진짜 페이스북 계정은 따로 있다. 학창시절 사진이나 우스꽝스러운 일상의 모습이 가득한 ‘민낯’의 페이스북 계정엔 친구들과 주고받는 장난스러운 댓글도 많다. 그는 “올 초 이직하려 알아볼 때 많은 회사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 제출을 요구했는데, 페이스북에서 과거 게시물을 관리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며 “속이려는 건 아니고 나를 선별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말했다.
조씨처럼 ‘이미지 관리’를 위해, 또는 인터넷 ‘신상털기’에 당하지 않으려고 가짜 계정이나 부(副)계정을 운영하는 ‘OAE족’(Online Alter Ego·온라인 분신)이 늘고 있다. 온라인상에 가상의 ‘나’를 만들어 놓고 진짜 얼굴을 숨기는 네티즌을 뜻한다. 이들은 친한 이들에게만 맨얼굴을 보여주고 회사 동료 등 공적인 관계에선 ‘관리된’ 모습만 드러낸다. 조씨처럼 계정을 여럿 운영하거나 밴드(Band), 비트윈(Between), 패스(Path) 등 ‘폐쇄형 SNS’를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OAE족인 대학생 이모(23)씨는 다른 묘안을 냈다. ‘가짜 신상’을 만들어주는 애플리케이션 ‘가짜 이름 생성기(Fake Name Generator)’를 사용한 것이다. 10만명 넘게 내려받은 이 앱은 성별·국적· 거주국가를 입력하면 이름·주소·생일·나이·직업·회사는 물론 차량번호·혈액형·아이디와 신체 사이즈까지 상세한 가상 인물 정보를 만들어준다. 아직 한국인 프로필은 제공되지 않지만 이씨는 이 앱에서 얻은 가짜 신상을 한국 상황에 맞게 바꿔 자신의 OAE로 ‘송모(27)씨’를 창조했다.
이씨는 송씨 이름으로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운영한다. 그는 “나를 가감 없이 표현하고 싶지만 사회적 정체성과 다른 부분까지 알려지는 게 싫다”며 “온라인의 또 다른 나를 통해 민감한 이슈에 대한 의견이나 개인적 취향을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OAE족을 위한 참고서도 발간됐다. 덴마크 언론인 퍼닐 트랜버그와 독일 저술가 슈테판 호이어는 ‘속이세요! 디지털 자기방어를 위한 안내’란 책에서 직업 생활과 분리된 개인적 삶을 온라인에서 마음껏 누리자고 독려한다. 저자들도 트위터와 링크드인은 실명으로 운영하지만 페이스북이나 다른 인터넷 활동에는 OAE를 활용한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채규만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을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커지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가상의 인물로 의사표현을 하다 보면 극단적인 경우 실생활과의 괴리에 따른 정서적 혼란을 겪을 수 있다”며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속일 경우 범죄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어 건강한 현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