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가계 빚 줄어드는데… 저신용·고령층이 ‘뇌관’
입력 2013-10-28 18:21 수정 2013-10-28 22:33
가계부채 문제는 ‘양’에서 ‘질’로 전환됐다. 가구당 부채는 오히려 감소세에 들어섰지만 저신용등급과 저소득층에게는 더욱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저신용등급(7∼10등급)의 부채를 줄여나가는 게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상환능력 부족한 고위험군=우리나라 가계부채의 뇌관은 저소득층, 저신용등급자, 자영업자 등 고 위험군이다. 이들의 부채 상환능력은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비은행 가계대출 증가, 자영업자 부채 과다, 높은 다중채무자 비중을 3대 위험요소로 꼽았다.
실제 저소득계층의 빚 부담은 중위계층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28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소득하위계층(1∼4분위·경상소득 2572만원 이하)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6∼9.0배에 달했다. 5∼7분위(경상소득 2573만∼5000만원 이하) 소득 중위계층의 1.5∼2.3배보다 큰 차이를 보였다.
◇고령층, 자영업자 빚 부담 커져=문제는 고위험군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부동산이 유일한 자산인 고령층이 은퇴를 하면서 이들의 빚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은퇴세대인 70대의 경우 지난해 기준 가구당 자산총액은 4억5948만원에 금융부채는 3115만원이었다. 고령층의 자산은 일견 많아 보이지만, 향후 부채가 증가할 위험요소도 다분하다. ‘부동산 불패’에 길들여진 고령층은 가계 빚을 줄이는 ‘디레버리징’ 속에서도 부동산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신평은 “고령층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유동성, 신용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특히 은퇴가능 연령인 베이비붐 세대는 거시경제적 충격이 왔을 때 실업 위험도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령층 못지않게 자영업자의 채무부담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가계금융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2.1배로 상용임금근로자(1.1배)에 비해 월등히 부담이 컸다.
이처럼 자영업자 부채가 늘어난 건 금융위기 이후 내수경기 부진으로 자영업자 소득이 나빠진 탓이다. 향후 전망도 밝지 못하다. 물가상승률이 1년 가까이 1%대에 머무는 등 극도로 소비가 침체돼 있다. 한신평은 “내수경기 부진으로 자영업자 소득여건이 나빠져 운영자금과 생활자금의 수요로 빚이 오히려 늘고 있다”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생계형 창업까지 늘어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적완화 축소도 부담=박근혜정부가 국민행복기금 등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고위험군의 가계부채 부담은 내년에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내년 초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금융위기 이후 이어지던 저금리 시대가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적완화 축소로 미국 장기금리가 오르면 한국은행 역시 금리를 올리게 될 것”이라며 “금리를 올리더라도 고위험군의 빚 부담을 고려해 그 속도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부채의 질적 문제에 금융당국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는 “가계부채의 규모는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면서도 “부채의 질 문제는 저신용·저소득자들의 LTV(담보가치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삼열 이경원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