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 부정 약물 파문] 약물 부정의 시작 ‘체대 입시’
입력 2013-10-28 18:13 수정 2013-10-28 15:00
공무원 체력시험의 약물 비리는 체대 입시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경우가 많다. 체력시험이 포함된 공무원 시험은 체대 졸업자 지원 비율이 높은 데다 애초에 해당 공무원 시험을 염두에 두고 체대 진학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다수 대학이 체대 전형 과정에서 도핑테스트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정부 기관과 마찬가지로 예산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렇다보니 수험생 사이에선 “(약물 주사를) 안 맞는 게 바보”라는 인식마저 퍼져 있다.
수도권 소재 대학 체육학과에 다니는 김모(27)씨는 28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나 “많은 입시생이 보충제 형태로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을 복용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특히 강남 쪽 체대입시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복용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체대입시학원은 수험생들에게 약물 사용을 권하고 있으며, 수험생이 진료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부정 약물이 들어간 주사를 추천받고는 학원장에게 효능을 확인하는 경우도 자주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의 A체대입시학원 원장은 “체력시험을 앞두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물 주사를 맞는 학생들이 있다”면서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6개월 이상 꾸준히 맞아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B입시학원 강사는 “한 번에 100만원이 넘는 주사도 있다. 학부모나 학생들이 약물의 효과를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증언했다.
C입시학원장도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효과를 기대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를 맹신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있다”며 “병원에서 학생들에게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학원 관계자와 수험생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병원에 취재팀이 수험생을 가장해 문의한 결과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어도 예방 차원에서 주사를 맞을 수 있다”거나 “의사와 안면이 있을 경우 주사를 쉽게 맞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체대입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공무원 시험과 체대 입시의 도핑테스트 실시 여부를 묻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주사 놔주는 병원을 알려 달라” “부스터 복용법을 가르쳐 달라” 등의 질문도 반복해서 올라온다.
교육부 심민철 대입제도과장은 “부정 약물 투약 행위 적발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개별 대학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라며 “교육부 차원에서 실태 조사 등을 벌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체대 입시의 체력시험은 수능과 달리 각 대학에 일임돼 있다. 학교가 사전에 명확한 금지 규정을 고지해야 하지만 이런 규정을 가진 대학이 거의 없다. 부정행위가 드러날 경우 국립대 응시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립대 응시자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강덕모 세종대 체육학과 강사는 2010년 한국체육철학회지에 기고한 ‘입시체육의 빛과 그림자’ 논문에서 “입시 체육에 약물복용과 관련된 공정성과 윤리의식 부재의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신체적 기능과 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약물은 단기간에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부정적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체육 관련 학과의 실기고사가 도덕 불감증에 심취된 사회 성원을 육성하는 타락된 입시제도가 되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하면서까지 신체적 완전함을 탐구하는 전공 분야에 입문하려 한다는 것은 목표 의식이 부재된 현실 도피적 진학”이라고 비판했다.
박요진 이도경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