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체력시험 ‘부정 약물’ 횡행
입력 2013-10-28 18:07
경찰, 소방관, 중·고 체육교사 등 국가공무원 시험의 체력시험에서 약물을 이용한 성적 조작이 횡행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응시자들을 상대로 ‘약물주사 장사’까지 하고 있다. 이런 공무원 시험은 통상 10대 1 이상 치열한 경쟁이 벌어져 0.01점 차로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약물 복용이 당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은 약물 비리의 규모와 실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인천에서 경찰 시험을 준비 중인 A씨(29)는 28일 국민일보 취재팀과 만나 “필기시험 비중이 낮아지고 체력검정 배점이 높아지는 추세여서 부정 약물을 투여하는 경찰 지망생이 많다”며 “100m 달리기 기록이 1초만 줄어도 점수가 많이 올라가 부정행위인 줄 알지만 외면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경찰시험 합격자들이 교육받는 경찰학교에서도 부정 약물을 복용한다는 진술도 나왔다. 성적이 좋으면 희망 근무지나 전공 배정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임용 2년차 경찰 B씨는 “임용 동기가 약물을 먹고 악력(握力) 측정을 받는 걸 봤다”며 “그 동기는 약물을 복용하면 측정 결과가 좋아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평소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다”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의 부정 약물 복용은 체대 입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방 체대 출신의 공무원 시험 수험생 K씨(23)는 “약물을 쓰면 기록이 일시적으로 눈에 띄게 증가하다 보니 한 번 먹으면 안 먹을 수 없다”면서 “이미 체대 입시 때부터 부정 약물을 복용하는 수험생이 전국적으로 굉장히 많다”고 귀띔했다.
체력시험을 위해 응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약물은 스테로이드 주사나 ‘부스터’류다. 부스터는 근육을 자극해 근육 성장을 촉진시키는 보충제 형태의 약물이다. 취재팀이 체대 입시 수험생 또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가장해 서울의 각종 병원에 문의한 결과 “스테로이드 외에도 체대 입시에 필요한 주사 종류가 많다”거나 “원장님과 잘 얘기하면 (질병이 없어도) 주사를 맞을 수 있다”며 유인하는 병원이 여럿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정부 당국과 체대를 둔 대학들은 부정 약물 행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매년 경찰 공무원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합격자 중 약물 복용자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지만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약물 복용자를 걸러내는 도핑 테스트에 지원자 1명당 30만∼50만원이 드는 데다 판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전형 일정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도핑 테스트를 의무화한 법령도 없다.
정부경 박요진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