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황홀] 협정(A Pact)
입력 2013-10-28 17:55
I make a pact with you, Walt Whitman-
I have detested you long enough.
I come to you as a grown child
Who has had a pig-headed father;
I am old enough now to make friends.
It was you who broke the new wood,
Now is a time for carving.
We have one sap and one root-
Let there be commerce between us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월트 휘트먼씨 협정 한 건 맺읍시다
내 오랫동안 당신을 증오해 왔건만
이제 클 만큼 커서 당신에게 왔소.
황소 고집쟁이 아버지 같은 당신을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되었단 말이오
새 나무를 자른 건 당신이오
그러나 이제 목각을 할 시간 아니겠소
우리는 한 피(수액)와 한 뿌리를 가졌으니
이제 협정 한 건 맺읍시다.
모던보이 에즈라 파운드가 광대한 아메리칸 스타일을 확립시킨 대선배 월트 휘트먼(1819∼1892)에게 도전장을 내는 시다. 휘트먼을 빈정대는 듯하지만 단순히 빈정거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 경도돼 있던 이미지스트 에즈라 파운드는 초월주의적이고 광활한 시를 쓴 휘트먼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러나 이 모던보이도 40대 중반에 이르러 휘트먼을 고집 센 미국시의 어버이로 인정하며 그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킬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이 시는 1916년에 발표됐다). 이 시를 지금 한국의 정치권에 보낼 만하다. 이제 서로 황소고집을 버리고 커다란 목재를 다듬어 달라고 말이다. 상대를 생각하지 않는 고집불통이나 건건이 싸움만 하려고 드는 것은 구상유취(口尙乳臭)한 것이라고 이 시는 알려준다.
대 계약서 하나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5대양을 주름잡을 선박 한 척 만들 만큼 큰 나무 한 그루를 베어 넘겨라. 선량들은 모두 대패와 끌을 들고 모여라. 시간이 없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임순만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