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정병석] 사회갈등 해결을 위한 리더십

입력 2013-10-28 17:54


“분쟁 악화되기 전에 명확히 조정하고 특정계층 부담 지울 땐 결단 내려줘야”

한국의 사회갈등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국가 중 2위 수준이라고 한다. 1위는 오랜 종교갈등을 겪고 있는 터키인데 한국은 종교문제 같은 국가적 이슈가 없음에도 2위라는 것이다.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82조∼246조원에 이른다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추정하고 있다. 세대 간의 일자리 갈등, 기초연금의 기준, 밀양 송전탑 분쟁, 비정규직 갈등, 중소기업과 슈퍼갑 대기업 갈등 등이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갈등의 해결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사회 활력 회복과 성장 지속을 위한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갈등지수를 10%만 낮추어도 GDP가 1.8∼5.4%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노동위원회에서 해고사건을 처음 다룰 때 당혹스러웠던 것은 규정위반, 폭행 등 이미 일어난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도 노사의 주장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여러 사례를 다루면서 점차 깨달은 것은 노사가 거짓말을 한다기보다는 사실관계를 자기 관점에서 보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정보만으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했던 노사협력 실패사례 보고서를 보면 노사분규로 실패한 회사의 노사는 공통적으로 극심한 상호불신과 대화부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망한 회사의 노사 대표를 어렵게 찾아가 면담을 해보면 서로 신뢰하지 못한 것,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한 것을 매우 후회한다는 것이다. 어느 노조위원장은 “회사가 어렵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어려운 줄 몰랐다. 경영자가 으레 하는 엄살로 생각하고 당초의 요구안을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회사 대표는 “노조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통회한다. 노조는 통상 불평불만을 하고 일방적인 요구나 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했지 회사의 어려움을 함께 의논하고 극복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그저 회사 입장을 외면하고 자기들 이익만 챙긴다는 오인에서 진정한 대화에 실패한 것이다.

사회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충분히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입장과 근거, 불만의 원인,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 양보의 대가 등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소통이 안 되고 불만이 누적되어 사태가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당사자 간에 적절한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신뢰할 만한 제3자가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잘 정립되지 않아 타협이 패배인 것처럼 인식되어 외골수로 당초의 주장을 고수하는 경향이 많다. 완전한 합의에는 이르지 못해도 충분한 대화를 해서 상대방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타협에 이를 수 있고 갈등도 대폭 줄어들게 마련이다. 시행에 급급하여 충분한 대화와 의견조율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더 큰 저항을 초래하고 시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바쁘다고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사회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의 최고 리더가 직접 나서서 핵심 당사자를 한자리에 모아 논의하고 조정하는 메카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갈등의 사회적 비용이 크다면 그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훌륭한 리더는 사회갈등이 악화되기 전에 분명한 조정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종전같이 ‘나를 따르라’는 식의 리더가 아니라 구성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서로 양보와 타협이 가능한 수준에서 조정해 주는 리더가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어느 계층이 보다 많은 부담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때도 결단을 내려주는 사람이 훌륭한 리더이다. 특정 계층이 보다 많은 희생을 하는 경우에는 사회가 그것을 인정하고 고마움을 표시하게 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정병석 (한양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