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변화의 심장이 뛴다” 삼성 재도약 선언… 이건희 회장, 신경영 20주년 행사 주재

입력 2013-10-28 17:36 수정 2013-10-28 11:15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창조경영’을 새롭게 내세웠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혁신, 창의를 강조했다. 자만에 빠지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하자고 역설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그라벤브루흐 호텔에서 외쳤던 ‘신경영’이 여전히 유효함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그룹 임원 200여명을 불러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 내가 회장 자리에 앉아보자는 생각을 가져보자”라고 질타한 바 있다.

삼성그룹은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신경영 20주년 만찬을 가졌다. ‘변화의 심장이 뛴다’라는 주제로 삼성의 재도약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만찬에는 이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과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사장·부사장단, 협력사 대표 등 35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여름철 전력난과 지난 8월 이 회장 건강 문제로 두 차례 연기됐었다.

이 회장은 시작 15분 전에 홍 관장, 이재용 부회장, 이서현 부사장과 함께 도착했다. 검은색 양복 정장을 입은 이 회장은 1층 로비에 들어선 뒤 취재진과 회사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홍 관장은 흰색 저고리와 연보라색 한복 치마를 입었다.

이서현 부사장은 갤럭시기어를 손목에 차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 부사장은 갤럭시기어를 써 보니 어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좋아요. 디자인도 좋고, 만보계로도 쓰고요”라고 웃었다. 중국 출장을 이유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 참고인에 출석하지 않았던 이부진 사장은 뒤늦게 만찬에 참석했다.

이 회장은 미리 준비한 영상메시지를 통해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했다. 그는 “양(量) 위주의 사고와 행동방식을 질(質) 중심으로 바꾸면서 경쟁력을 키워 왔다”며 “초일류기업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한 길로 달려왔고 그 결과 창업 이래 최대 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과거에도 잘 나갈 때마다 위기의식을 불어 넣었듯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고 있는 올해에도 예외 없이 ‘위기론’을 들고 나왔다.

특히 새로운 출발을 언급했다. 이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며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초일류기업을 향한 새로운 첫발을 내딛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책임도 거론했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에서 삼성의 비중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과 경제민주화 등 사회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라는 촉구로 풀이된다.

만찬은 신경영 20년의 성과와 의미를 조망하고 주요 경영진이 회고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 회장이 삼성전자를 암 2기라고 진단했던 것에 대해 “처음엔 자존심도 상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회장 말씀을 들을수록 위기감이 절절하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무선전화기 15만대(500억원 규모)를 불태우는 화형식을 떠올렸다. 그는 “화형식을 계기로 불량에 대한 안이한 마음을 털끝만큼도 안남기고 다 태워버렸다”며 “지금의 삼성은 거기서 시작됐다”고 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이 회장은 1990년대부터 디자인경영을 하고, 소프트경쟁력을 강조했다”며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들이었지만 그런 무형의 가치가 명품과 평범한 제품의 차이”라고 말했다.

행사장 앞 로비에는 각 계열사 사업의 특성에 맞게 제작한 조형물 30개가 전시됐다. 이 회장의 신경영 철학, 삼성의 성과·발전을 소개하는 38권의 국내외 책도 선보였다. 최고급 양식 코스요리가 나왔으며, 신경영을 선포했던 1993년산 샴페인과 화이트와인이 곁들여졌다. 1993년 입사한 남성 임원과 당시 삼성 어린이집에 다녔던 여성 직원이 남녀 대표로 나서 이 회장에게 신경영 어록을 담은 크리스탈 상패, 신경영 책자 등 기념물을 증정했다. 가수 조용필과 바다 등의 공연도 있었다. 오후 6시에 시작된 행사는 8시20분쯤 끝났다.

김찬희 임세정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