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盧 전 대통령 초상화 첫 공개

입력 2013-10-28 17:18


“얼굴을 자세히 그리지 말고 대강의 형태만 그려 주세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퇴임하기 직전 한국화가 김호석(56) 화백에게 초상화 2점을 주문했다. 하나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초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얼굴 없는 초상화였다. 두루마기를 입고 청와대 잔디밭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한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이란 바람 같은 거예요. 대통령의 무거운 직함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평범한 인간으로 남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구한 게 얼굴 없는 초상화였다.

김 화백은 이틀에 걸쳐 스케치를 했다. “목을 좀 돌려 달라”는 작가의 요청에 노 전 대통령은 군말 없이 응했다. 정상적인 초상화는 후반작업을 거쳐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에 걸렸다. 얼굴 없는 초상화는 완성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봉하마을 초상화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 영정으로 사용됐다.

김 화백은 얼굴 없는 초상화를 최근 완성해 ‘법’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여는 개인전을 통해 첫 공개한다. 김 화백은 “투박한 두 손과 검정 구두밖에 보이지 않지만 소탈하고 인간적인 노 전 대통령의 내면이 담겨 있는 초상화”라고 말했다. ‘그리움이 숨 막혀 그림이 된 김호석의 붓’이라는 타이틀의 전시에는 이 작품을 비롯해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20여점이 출품된다(02-733-198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