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깃한 흙 내음 느껴지는 상큼한 워킹… 지하철로 떠나는 서울근교 걷기여행 ‘우이령길’

입력 2013-10-28 17:16 수정 2013-10-30 11:12

옭매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이런 기분일까. 고작 등산화와 양말 속에서 열을 내던 발가락을 세상에 꺼내놓았을 뿐인데. 서늘한 땅의 감촉이 가을 햇살에 달뜬 얼굴의 열기를 쑥 내려놓았다. 마사토 작은 알갱이가 간질간질 간혹 귀찮게도 하지만 신발의 두툼한 쿠션 없이도 맨발의 발구름은 생각보다 편안하다. 우이령길 내 맨발길을 걷고 나니 다시 양말과 등산화를 꿰어 신는 일이 오히려 어색하기만 하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잇는 고갯길= 북한산둘레길 21구간이기도 한 우이령(347m) 길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사이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6.8㎞ 정도지만 길이 평탄하고 완만해 천천히 걸어도 두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홍은경 북한산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는 “아래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우이령 좌우에 위치한 오봉과 상장봉이 마치 소의 귀처럼 늘어져 보여서 우이령으로 불린다”고 설명해준다.

우이령길은 대동여지도에도 표시돼 있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된 길이지만 역사의 굴곡 속에 40여 년간 폐쇄됐다 2009년부터 탐방객 수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재개방됐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서 ‘서울의 DMZ’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웅장한 자연환경이나 화려한 식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적으로 식재한 나무와 자연스럽게 생육한 것들이 뒤엉켜 있고 답압(踏壓)으로 인해 나뭇잎이 화석처럼 무늬 새겨진, 반질반질한 고갯길이다. 단풍이 울긋불긋 물들기 시작한 이맘때부터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레드 카펫을 펼쳐놓는 늦가을까지 정취가 가장 좋다. 홍 해설사는 “교현 쪽은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우이 입구는 고갯마루까지 조금 경사가 급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섯 개의 공깃돌을 머리 위에 올린 오봉= 송추 쪽에서 길을 잡고 홍 해설사의 설명으로 길 양옆으로 핀 꽃과 나무들에 눈인사를 나누며 나아가는데 삐쭉 솟은 전봇대가 영 마뜩찮다. 말간 몸체를 빛내는 오봉이 파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 보니 프레임 안에 죽죽 갈긴 검은 선이 자꾸 걸리는 탓이다.

석굴암과 유격장을 지나 널찍하던 길이 조금은 오붓하게 좁아지고 곧 거대한 오봉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대에 닿는다. 잘생긴 다섯 봉우리가 머리 위에 족두리를 쓴 듯 공깃돌 같은 바위를 올려놓고 늘어섰다. 이 오봉은 옛날 어느 마을의 다섯 총각이 원님의 어여쁜 외동딸에게 장가를 들기 위해 오봉과 마주한 상장능선의 바위를 오봉에 던져 올리는 시합을 해서 생겨났다고 한다. 봉우리마다 바위가 떡하니 자리한 것으로 봐서는 다섯 총각이 다 성공을 한 셈인데 원님의 어여쁜 외동딸은 결국 누구에게 시집을 갔는지 모를 일이다.

오봉 전망대를 아쉬운 발길로 지나면 다리쉼을 하도록 의자를 마련해 둔 넓은 공터가 펼쳐진다. 그 앞 대전차 장애물이 있는 곳이 고갯마루다. 철원이나 의정부 등지에서나 볼 수 있는 시설물이 고층 빌딩의 숲을 이루는 서울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 이질적이다.

이제껏 걸었던 길에 비하면 가파르다고까지 할만한 내리막이 시작된다. 홍 해설사가 잎이 두 개짜리 솔잎을 주워 “우리나라 소나무는 잎이 두 개지만 미국산 리기다소나무는 잎이 세 개, 그리고 잣나무는 다섯 개”라고 설명한다. 털이 난 것처럼 몸체에 솔잎이 무성한 리기다소나무와 붉고 미끈한 몸매를 드러낸 우리 소나무는 완연히 다르다.

길 입구 포장도로를 뺀 우이령길은 십리가 조금 넘는 거리. 못내 아쉬워 뒤를 돌아보니 가을이면 가장 먼저 붉게 단풍이 든다는 붉나무가 앙증맞은 손바닥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다.

김 난 쿠키뉴스 기자 na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