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 40년 社史로 본 아웃도어 발전사… 강태선 회장 회고

입력 2013-10-28 17:11


가을을 맞아 주말이면 저마다 아웃도어 의류로 무장한 등산객들이 전국의 산하를 원색으로 수놓고 있다. 언제부턴가 아웃도어는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블랙야크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블랙야크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아웃도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블랙야크가 최근 국내 아웃도어 1세대인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의 회고 등을 토대로 블랙야크 40년 사사(社史)를 펴냈다. 블랙야크 40년 사사를 통해 국내 아웃도어 역사를 돌아봤다.

국내 최초의 야외 레저활동은 일제 강점기 말부터 시작된 산악활동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활동은 1970년대 들어 고등학교 산악부의 활동과 맞물려 왕성하게 펼쳐졌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은 “서울 북한산 인수봉과 도봉산 선인봉에는 주말이면 내로라하는 바위꾼들이 몰려들었고 자연발생적으로 단위 산악회가 늘어났다”며 “그런 점에서 국내 아웃도어의 역사는 길게는 70년, 짧게는 40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국내 등산장비시장은 미군이 야전에서 사용하는 군수품을 개조해 만든 텐트, 침낭, 배낭이 전부였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교통이 발달하면서 등산 인구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국내 아웃도어 산업의 여명기다. 1970년대 초 비로소 등산장비 국산화의 길이 열린다. 강 회장은 “경제가 발전하는 속도에 비례해 등산장비 시장도 분명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산 등산용품을 꼭 만들어보겠다는 오기로 1973년 2월 종로 5가에 동진사를 창업했다”고 회고했다. 동진사는 블랙야크의 전신이다.

처음에는 자이언트라는 브랜드로 배낭을 만들었다. 초기 동호인 중심의 산악회에 배낭을 공급하며 시장상황을 살폈다. 이후 강 회장은 프로자이언트라는 자체 브랜드로 텐트, 침낭, 신발에 이르기까지 각종 등산장비를 제작해 시장에 선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진사는 등산장비시장에서 손꼽히는 업체로 주목 받는다. 많은 기업(지금의 대기업)들이 조직과 자금력을 앞세워 등산장비 업계에 뛰어든 것도 이즈음이다. 특히 고(故) 고상돈 대원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1977년을 전후해 국내에서 본격적인 등산 붐이 일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산악동아리가 늘었고 일반인들 사이에선 산악회가 결성됐다.

하지만 1979년 10·26 사건으로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등산객의 발걸음은 뚝 끊기게 된다. 여기에 12·12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으로 사회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었고 야외활동을 즐기는 이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1982년 프로야구 개막 등 스포츠 육성책과 함께 그해 1월 5일 ‘통행금지 해제’ 등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각종 정책을 편다. 통행금지 해제로 인한 등산인구 증가는 아사 직전까지 갔던 등산장비업계를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 강 회장은 “당시 그동안 창고에 쌓아 놓았던 등산장비를 한 번에 다 팔았다”며 “구멍만 뚫리지 않았으면 무조건 팔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이후 1980년대 경기 호황기를 맞아 아웃도어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간다. 하지만 곧이어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찾아왔다. 1990년 모든 산에서 취사 및 야영을 금지하는 산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업계는 당장 날벼락을 맞았다. 당시 등산장비 업계의 70% 이상이 폐업했다.

이런 와중에 강 회장은 1993년 8월 뜻하지 않은 기회를 잡는다. 현대자동차가 소나타 새 모델을 선보인 기념으로 전 사원에게 침낭을 선물하기로 한 것이다. 주문량만 3만2120개. 당시 동진레저(1992년 상호변경)가 연간 판매하는 침낭 숫자가 1만개 정도였으니 실로 엄청난 양이었다.

이후 강 회장은 불황돌파의 해답을 찾기 위해 히말라야로 떠났다. 강 회장과 히말라야의 인연은 이때 시작된다. 강 회장은 등산장비에서 벗어나 ‘등산의류사업 진출’이라는 계획을 안고 돌아온다. 당시 등산시장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했다. 그러나 강 회장은 등산복 시장이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을 뿐 성장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했다.

2년여의 연구 끝에 1995년 처음으로 등산복을 출시했다. 1996년에는 ‘산에도 패션시대가 온다’는 광고를 앞세워 검은색 등산복을 대량 생산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실직자들을 산으로 몰리게 만들었고 2000년대 들어 아웃도어 의류가 패션의 한 축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2002년 열린 한-일 월드컵대회를 전후해 등산 붐이 불며 전국적으로 지역 및 직장 단위 산악회가 조직됐다. 생각보다 빠른 IMF 졸업으로 경제는 안정됐고 주 5일제 도입으로 국민의 여가활동시간이 늘어났다. ‘아웃도어는 단지 등산복이다’라는 고정관념도 깨졌다. 화려한 색깔을 앞세운 기능성 등산의류는 야외에서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착용하고 다닐 정도로 진화했다.

국내 아웃도어시장은 2003년 이후 연 평균 25%씩 늘어나는 고성장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아웃도어 전체 매출 규모는 6조40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80%를 블랙야크 등 10여 곳의 대형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다.

강 회장은 산을 다니면서 자신을 발견했고 사람이 살아가는 법칙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누군가는 아웃도어 업계가 포화라고 이야기하지만 아웃도어는 무궁무진하다”며 “레저산업의 발전과, 사람이 추구하는 건강과 쉼이 계속되는 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호 쿠키뉴스 기자 epi0212@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