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안중근, 일본엔 니시자카 義士’… 안중근 의거 104주년, 포털 영화 ‘리부트’ 화제

입력 2013-10-27 19:17


‘사람이란 것이 춘추(春秋)만 정대(正大)하면 피아국(彼我國)이 상관없소. 한국에는 어찌하여 매국대신이 있고 일본에는 니시자카 유타카씨 같은 의사(義士)가 있소.’

1906년 12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엔 일본인 니시자카 유타카(西坂豊)를 ‘의사’라고 칭하며 을사조약에 찬성한 5명(이완용, 이제용, 박제순, 권중현, 이근택)을 통렬히 비난하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인 의사’ 니시자카,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4주년(26일)을 즈음해 포털사이트 영화 코너에 ‘리부트(Reboot)’라는 제목의 예고편이 올라왔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시간적 배경을 2014년으로 옮겨 담은 이 영화에 니시자카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니시자카는 이토 히로부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한국 침략 반대’를 주장하고, 일축 당하자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한다.

니시자카를 연기한 배우 김주황(42)씨는 27일 “동양의 평화, 한국 침략 반대라는 소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일본인이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제작 중인 카우파영화연구소 허존 대표는 “미궁에 빠져 있는 안 의사 유해 발굴에 관심이 많아 7개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발굴 과정을 그린 영화를 기획했다”며 “자료 수집 과정에서 니시자카 유타카란 인물에 대해 알게 됐다. 언제 제작이 완료될지는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니시자카에 대한 국내 연구는 2011년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일본에서 발표한 소논문 ‘한일양국 평화주의자들의 모델-안중근과 니시자카 유타카’가 유일하다.

대한매일신보 등 당시의 몇몇 언론 기사를 토대로 한 이 논문에 따르면 니시자카는 1879년생으로 안 의사와 동갑이다. 아이치현(愛知縣)에서 태어나 와세다(早稻田) 대학과 세이조쿠(正則) 영어학교를 졸업했다는 것 외엔 알려진 그의 이력이 거의 없다.

다만 대한매일신보 1906년 12월 21∼24일자와 28일자에는 동양의 평화를 주창하던 그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서울에 통신사 설치 허가를 요청했으나 통감부의 방해로 좌절됐다. 이에 침략행위를 항의하는 서신을 보냈으나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고 대한침략 반대를 분명히 하고자 1906년(27세) 12월 6일 지금의 서울 운니동인 이현(泥峴)의 부지화(不知火·일본명 시라누이) 여관에서 할복자살했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1909년 10월 26일)가 일어나기 약 3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월이 100년 이상 흐르는 동안 니시자카는 묻혀진 인물에 머물렀다. 신 연구원은 “대한매일신보가 안 의사보다 먼저 니시자카에게 의사라는 칭호를 부여한 점을 볼 때 당시 한국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며 “그를 기리는 동상과 기념비 건립을 서울시에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