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메르켈 도청 사실 3년 전 이미 알았다”

입력 2013-10-27 18:34 수정 2013-10-27 08:08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야당 정치인 시절부터 10년 넘게 도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도 더 자세히 보고받기를 원했다고 독일 언론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도청 사실을 알았다면 중단시켰을 것이라던 오바마의 해명과 정면 배치된다.

NSA 고위 관계자는 NSA 키스 알렉산더 국장이 2010년 메르켈 도청 내용을 오바마에게 보고했다고 독일 일요판 신문 빌트 암 존탁에 밝혔다. 신문은 이후 NSA는 메르켈이 소속당 인사들과 통화에 사용했던 휴대전화는 물론 암호화된 관용 전화기까지 도청하는 등 감시 범위를 확대했다.

전문가들은 메르켈이 매일 동료에게 보내는 10여건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물론 대화 내용까지 NSA가 감시할 수 있었다고 본다. 보안장치가 된 사무실 내 유선전화만이 안전한 통신수단이었다.

오바마는 메르켈 도청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했었다. 메르켈과의 전화 통화에서는 “정보기관이 도청하는 걸 알았다면 즉시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독일 언론들은 전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독일 정부 관계자들에게 오바마는 도청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의 휴대전화는 2002년부터 미 첩보기관의 감청 명단에 올랐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이 보도했다. 메르켈은 2000년 여당이던 독일 대사관에 합법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스파이 지부를 운영했다. SCS로 불리는 이들은 중앙정보국(CIA) 직원들과 함께 첨단 감시 장비로 독일 정부청사 지역에서 이뤄지는 통신을 감청했다. 슈피겔이 입수한 SCS 기밀문서에는 이 활동이 노출되면 미국의 대외 관계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기록돼 있었다.

무단 감청시설은 전 세계 약 80곳에서 운영됐다.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마드리드, 이탈리아 로마, 스위스 제네바, 체코 프라하 등 유럽 주요 도시 19곳이 포함됐다.

미국은 영미권 우방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비밀 감청시설을 운영하지 않았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이들 4개국과 미국은 각국이 캐낸 첩보를 공유하는 특별 협약을 맺고 있다.

미국의 전직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는 오히려 미국이 프랑스 이스라엘 한국 등 우방들의 경제 스파이 행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주장으로 맞불을 놨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도 미국 내에서 스파이 행위를 하는 대표국가”라고 CNN에 강조했다.

26일 미국 워싱턴 중심가에서는 시위대 수천명이 의회 건물로 행진을 벌이며 미국의 광범위한 정보수집 활동을 규탄했다. 시민단체 등은 57만명 이상에게 서명 받은 청원서를 의회에 전달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