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20시간씩 일했지만 수당 못받아… “한국 공무원은 눈이 없어요”

입력 2013-10-28 05:44


외국인 노동자로 사상 첫 국감 증언 딴 소푼씨

“한국 공무원은 눈이 없어요. 눈앞에 증거를 보여줘도 믿어주지 않고….”

캄보디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딴 소푼(34·여)씨는 일부러 이 말을 한국 친구에게 배워 외워뒀다고 했다.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일에 대해 여러 번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공무원들이 믿어주지 않아 하소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그가 지난 14일 외국인 노동자로는 처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의 눈에 비친 국정감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5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서 만난 소푼씨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법이 잘 지켜지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와서 보니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입국한 그는 1년간 전남 담양의 한 딸기 농장에서 계약서상의 월 226시간을 훌쩍 넘긴 320시간씩 일했지만 추가 노동에 대한 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다. 자신이 1년간 일하며 작성한 근로일지와 일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 등을 광주 고용노동청에 제출했지만 공무원들은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공무원에겐 눈이 없다”는 말을 굳이 외워 다닌 것이다.

그는 결국 광주 고용노동청과 고용노동센터에 최저임금 및 근로계약 위반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직장을 옮겨 달라며 사업장 변경신청 민원도 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40만5240원밖에는 받을 수 없으며 사업장 변경도 불가능하다는 회신이었다. 소푼씨는 “기대했던 금액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결정이었다”며 “이 때문에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감사장에 들고 갈 자료와 할 이야기를 며칠 전부터 준비했다. 그러나 지난 1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선 여야 의원들의 다툼이 계속돼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분에 그쳤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였는지 2분 동안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며 “그런데 말하고 나서 살펴보니 국회의원들도 내 말을 안 믿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국회의원도 ‘눈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단 2분의 국정감사 발언이 가져온 반전은 드라마틱했다. 소푼씨의 진정을 받아주지 않던 광주 고용노동센터가 24일 오전 전화를 걸어와 “사업장 변경을 허가해 주겠다”면서 “여권번호 등 필수 제출자료만 오늘 안으로 제출해 달라”고 했다. 국감 발언 2분으로 4개월 넘게 끌어온 진정이 해결된 것이다.

소푼씨를 국감 참고인으로 신청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25일 광주 고용노동청 국감을 앞두고 황급히 처리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주 고용노동센터 측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우연히 국정감사일과 겹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소푼씨는 4개월간 진정 처리가 늦어지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높은 뜻 푸른교회’ 예배 장소인 서울고 강당 뒷정리를 해주고 7만원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만약 노동센터가 일찍 사업장 변경신청을 받아들여줬다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다. 소푼씨는 “고용노동청은 노동자들의 어머니인데 이곳에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권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사장님’들을 향해 “제발 좀 근로계약서대로 일을 시키거나, 더 시켰으면 그만큼 돈이라도 더 달라”고 하소연했다.

안산=박요진 기자 true@kmib.co.kr 사진 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