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시 23:4)’와 다를 바가 없었다. 2011년 3월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은 강한 나라다’라는 믿음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재해 지역과 피해를 면한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은 깊은 골이 파였다. 점점 피해가 확산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는 희망을 잃은 이들을 또 한번 낙망케 하고 있다.
‘재앙은 왜 하필 나를 덮쳤는가.’ ‘그리고 왜 나는 살아남았는가.’
아쿠도 미스하루(일본 세이가쿠인대) 총장은 2년 6개월 전 발생한 ‘대재앙’이 남긴 두 개의 신학적 질문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지난 25일 서울 광장동 장신대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개최된 제3회 한·일 신학자 학술회의. ‘현대의 고난 문제-대재앙·비탄·죽음’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아쿠도 총장은 자연재해 대형사고 등 삶 속에서 맞이하는 예기치 못한 고난의 의미를 성경(요 9:1∼7)에서 찾아나갔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보던 사람을 두고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요 9:1∼7)’이라는 성경 말씀에 주목했다. 그는 “(이 성경 말씀은) 고난을 체념하며 받아들이거나, 죄에 대한 인과응보로 이해해 왔던 역사·문화적 사고 패턴을 뛰어넘는 고난에 대한 해석”이라며 “‘왜 재앙이 나를 덮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계획하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존자들에게는 재건의 사명이 있음을 강조했다. 아쿠도 총장은 “생명의 존엄성 회복은 물론이고, 무너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다시 세우는 일이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과제”라며 “동일본 대지진으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지역과 주민들의 재건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가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사회의 각종 재난을 두고 등장한 ‘기술문명적 재난’이라는 용어도 눈길을 끌었다.
‘현대의 대재난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주제로 발제한 현요한 장신대(조직신학) 교수는 “과거에는 대홍수와 가뭄 등 재난이 주로 자연 발생적이었지만, 현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만든 제도와 기술, 시스템 등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기술문명적 재난’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대형화학공장 폭발 및 항공·선박 사고, 체르노빌(1986)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현 교수는 “특히 특정 재난으로 피해를 당한 이들을 책망하고 정죄하는 것은 성경(예수님)의 가르침과 어긋난다”면서 “‘그들만의 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기술문명적 재난의 공범자들이고 책임자들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회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고난이 왜 덮쳤을까 하나님 사랑·계획하심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한·일 신학자 학술회의
입력 2013-10-27 17:38 수정 2013-10-27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