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공연 가진 패티김… ‘가수 인생 55년’ 1만 팬과 함께 노래했다
입력 2013-10-27 17:38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공연장에 그의 노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이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한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랫말처럼 ‘가을을 남기고’ 떠나는 가수의 마지막을 팬들은 뜨거운 박수로 배웅했다.
무대의 주인공은 가요계 최고의 디바 패티김(본명 김혜자·75). 지난 26일 밤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패티김의 은퇴 공연 ‘굿바이 패티’는 그의 55년 가수 인생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패티김은 강한 카리스마로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공연은 오후 4시20분쯤 대형 북 연주자들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막을 올렸다. 근사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등장한 패티김은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 등을 노래한 뒤 이 같이 말했다.
“오늘 공연을 앞두고 초조하고 두려웠어요. 물론 (오늘이 마지막 콘서트라는 게) 서운하기도 하죠. 미련도 있죠. 하지만 오늘만 지나면 저는 자유로워져요. ‘살이 찌면 어떡하나’ ‘의상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목이 쉬면 큰일인데’…. 이제는 이런 걱정 안 해도 되네요. 앞으로는 김치에 밥에 아이스크림에 도넛, 마구 먹을 수 있겠네요(웃음). 아임 프리(I’m Free)!”
대형 북 연주자들 외에 25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 50명 규모의 합창단이 함께 공연을 꾸몄다. 패티김은 이들과 함께 ‘못 잊어’ ‘초우’ ‘가시나무새’ 등을 차례로 불렀다. 그는 ‘아도로(Adoro)’를 부른 뒤 “55년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행복했다. 진정한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열정적인 무대가 이어졌다. 객석엔 지난해 암 선고를 받았지만 지금은 건강을 회복한 그의 여동생, 어머니를 응원하려고 외국에서 온 패티김의 자녀들도 있었다. 패티김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 1만명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외치기도 했다.
“저는 요즘 모래시계가 됐습니다. 거꾸로 뒤집으면 제 나이(75세)는 57세 밖에 안 되죠. 마음 같아서는 37세라고 말하고 싶어요. 실제로 수영을 하면 제가 30대들은 다 이길 자신이 있어요(웃음).”
패티김은 1958년 미 8군 무대에서 처음 노래를 시작했다. 그가 가요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몇 가지 기록만 열거해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공식 초청한 최초의 한국 가수’(1960년), ‘대중 가수로는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78년) ‘한국 가수 최초 미국 카네기홀 공연’(89년)….
패티김은 지난해 2월 은퇴를 선언하고 이날까지 서울을 포함해 전국 22개 지역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은퇴 투어’를 찾은 관객 수는 10만명이 넘는다. 이들 중 1만명은 저소득층을 비롯한 문화소외계층으로 패티김이 특별히 초대했다.
그는 마지막 공연에서 앙코르 곡으로 ‘이별’을 택했다. 무대 양 옆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엔 눈물을 흘리는 패티김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오랜 세월 언제나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무대를 떠나지만 여러분의 곁에 항상 제 노래가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굿바이.”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