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다룬 ‘당통의 죽음’ 26년 만에 다시 본다

입력 2013-10-27 17:38


20대에 요절한 독일의 천재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1813∼1837)의 ‘당통의 죽음’이 26년 만에 국내에서 막을 올린다. 프랑스 혁명 당시 급진파 로베스피에르와 온건파 조르주 당통의 갈등 끝에 당통이 단두대에 처형됐던 실제 역사를 다룬 시대극이다. 격변의 시대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정치가들 이야기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난해한 은유가 많아 연출가와 배우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던 작품이다. 국내에서도 그동안 두 차례만 공연됐다. 1983년 김창화 연출로 초연됐고 그로부터 4년 뒤 김철리가 무대에 올린 것이 마지막이다.

이번에 서울 예술의전당이 해외 연출가를 초청하는 ‘토월연극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며 루마니아 연출가 가보 톰파에게 이 작품을 맡겼다. 유럽 등 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톰파는 뷔히너의 또 다른 대표작 ‘보이체크’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또 2011년 국내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 공연을 통해 원작을 뛰어넘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감각을 선보이며 호평 받았다.

그럼에도 한국 관객 앞에서 한국 배우들과 펼치는 이번 무대는 그의 말대로 ‘큰 위험부담(huge risk)’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비밀 병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원작에도 없던 ‘거리의 광대’ 역할을 새로 집어넣고, 소리꾼 이자람을 전격 캐스팅한 것이다. 100여명이 넘는 인물을 배우 35명이 연기했던 원작과 달리 이번에는 배우를 14명으로 과감히 압축했다. 그리고 이자람에게 ‘1인 다역’을 주문, 상당수의 역할을 이자람이 소화하게 된다.

톰파는 “많은 캐릭터를 한 명으로 압축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억척가’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라며 “이자람은 이번 연극에서 ‘역사의 천사’라고 부를만한데, 거리의 광대로 판소리를 부르며 프랑스 혁명시대와 지금의 한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톰파는 지난해 루마니아 클루지에서 열린 국제연극제에서 이자람의 ‘억척가’를 본 뒤 홀딱 반했다고 한다.

지난 22일 언론에 공개된 연습 장면에서 이자람은 기존의 판소리 공연 무대와 사뭇 다른 가창과 연기를 선보이며 변신을 예고했다. 그는 “제가 이전 무대에서 보여줬던 판소리를 기대하는 분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전통적인) 판소리를 하지는 않지만 판소리를 해야만 할 수 있는 연기와 소리를 보여드릴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와 더불어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로 분해 다른 색깔의 매력을 선보인다. 2003년 ‘보이체크’에서 절제된 내면 연기를 보였던 박지일이 당통을 맡았다. 지난해 연극 ‘그게 아닌데’로 대한민국 연극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던 윤상화가 로베스피에르로 분한다. 두 사람은 지난 4월부터 진행된 오디션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톰파에게 선택받은 배우들이다.

톰파는 “지적인 텍스트를 다를 줄 알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면서도 냉철한 모습을 함께 연기할 수 있는, 많은 경험을 쌓은 배우들이 필요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설명했다.

톰파와 함께 내한한 무대 디자이너 안드레이 보스는 프랑스 혁명기의 파리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치밀한 해부가 벌어지는, 모던한 도시로 공간을 연출한다. 파격적인 무대와 연출로 권력 갈등과 혁명의 와중에서 고뇌하는 인간들의 삶이 결코 남의 나라, 역사 속의 사건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달 3∼1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7시. 일요일 오후 3시. 월요일 공연 없음. 관람료 3만∼5만원(02-580-1300).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