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먼로·헵번이 다시 살아나 당신을 보고 있다
입력 2013-10-27 17:05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강형구(59) 작가는 10년 전만 해도 주로 자화상을 그렸다. 텁수룩한 수염과 강렬한 눈빛이 시선을 사로잡는 얼굴 그림이었다. 다소 섬뜩한 작가의 초상화를 사가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쉰셋 나이에 처음으로 작품을 팔았다. 캔버스를 둘둘 말아 중국 상하이아트페어에 나갔을 때였다. 이전까지 ‘팔포(팔기를 포기한) 작가’에서 스타 작가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 등에서 웬만한 작품이 2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대법관을 지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앙대 회화과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10년간 직장을 다니다 갤러리를 차렸으나 얼마 못가 문을 닫았다. 이후 본래의 직업인 화가로 돌아왔다. 줄곧 초상화에 몰두한 것은 얼굴 그림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시대의 아이콘을 담을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전반을 조명하는 대규모 개인전이 경기도 광주 쌍령동 영은미술관에서 12월 15일까지 열린다. 전시 타이틀은 ‘아이 씨 유(I see you)’로 “작품 속 인물이 당신을 보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가는 “감상자와 교감하기 위해 얼굴 정면을 주로 그린다”며 “그림이 완성될수록 그림 속 인물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감정을 관람객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1층에는 메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반 고흐, 앤디 워홀 등 대중적인 인물화를 선보이고, 2층에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 얼굴 조각품과 캐리커처가 전시된다. 회화와 조각을 오가며 여러 가지 작업을 시도했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그는 “투수가 다양한 구질을 가져야 성공하듯 화가도 한 가지 화풍만 고집한다면 그림 그리는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가 그리는 인물은 하나같이 강렬하다. 정면을 응시하거나 관객을 노려보는 형상이다. 얼굴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얼굴을 그리지만 그 안에 시대와 감정을 담고 있다”고 했다. “얼굴뿐만 아니라 손도 마찬가지예요. 마더 테레사 수녀를 그리면 손 주름이 70%를 차지하는데 손을 통해 테레사를 보여주는 겁니다. 기법보다는 그 사람 분위기와 색감, 정신이 더 중요한 것이지요.”
그는 붓질을 하지 않고 에어브러시로 액션페인팅을 하듯 작업한다. 캔버스는 물론이고 알루미늄 패널과 아크릴 보드 위에도 그림을 그린다. 전동 드릴을 사용하기도 한다. 미세한 머리카락까지 순식간에 그려 나간다. 하지만 그는 극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작업과정에서 극사실기법은 30% 정도밖에 안 돼요. 분위기, 색깔, 정신 등의 표출기법이 70%를 점하고 있어요.”
유명인 얼굴을 그리다 보니 국내 연예인들의 초상화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 그는 “그동안 연예인은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 먼로나 헵번을 그린 것은 시대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지휘자 정명훈과 배우 안성기의 얼굴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다음 전시회에서는 두 사람의 얼굴 스케치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소개했다(031-761-0137).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