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염운옥] 람페두사의 비극

입력 2013-10-27 18:56


지난 3일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부근의 섬 람페두사에서 500여명의 아프리카 난민을 실은 배가 전복했다. 이들을 태운 20여m 길이의 작은 고기잡이배가 람페두사 해안 800m 부근에 이르러 엔진 고장이 나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갑판 위에 불을 지폈다. 이것이 잘못돼 배 전체에 불이 옮겨붙었고, 배가 뒤집히면서 전원이 바다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194명이 사망했고 150여명이 실종됐다. 이들은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인들로 리비아 미스트라에서 탑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튀니지와 몰타 사이에 있는 람페두사 섬은 이탈리아 반도보다 튀니지에 더 가깝다. 북아프리카에서 겨우 12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섬은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내전과 빈곤에 시달리다 이주를 선택한 사람들, 전쟁과 살육을 피해 난민이 된 사람들에게 람페두사는 유럽으로 가는 탈출구다. 면적 20㎢의 작은 섬에 수용할 수 있는 난민은 800명에 불과한데, 2009년에는 보트피플 2000여명이 몰려들었다. 1988년 이후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다 죽은 난민은 1만9100명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람페두사 섬 공동묘지에는 유럽 대륙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이름 없는 이민자의 무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1일에도 또 다른 난민선이 좌초해 최소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항 인근에서도 난민선이 침몰해 최소 12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중해 바다에 아프리카 난민들의 주검이 쌓여 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맨 처음 물에 빠진 난민을 구출하기 시작한 이는 람페두사의 어부, 비토 피오리노(Vito Fiorino)였다. 대부분의 선박들은 외면한 채 지나갔다. 심지어는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선박 위에서 휴대전화나 비디오로 촬영한 것으로 드러나 분노를 사고 있다. 피오리노는 동료 어부들과 함께 허우적거리는 난민을 한번에 4명씩 구해 47명을 육지에 나르는 작업을 필사적으로 해냈다. 그가 오전 6시30분에 해양구조대에 긴급구조를 요청했지만 구조대가 도착한 건 오전 7시30분이었다고 한다. 구조대는 도착 직후에는 오히려 피오리노에게 피니보시(Fini-Bossi) 이민법을 설명하면서 난민들로부터 떨어질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피니보시법은 배타적 이민법으로 이탈리아 북부연합당과 보수여당이 제정했다. 구출작업 중이던 어부들과 뒤이어 출동한 해양구조대 소속 의사들이 격렬하게 항의했고, 그제야 난민 구출작업에 나섰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현재 이탈리아 국회에서는 난민들 구조작업에 처음 나섰던 피오리노와 그의 동료 어부들과 의사들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자는 제안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현재 이탈리아 피니보시법에 따라 실정법을 어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된 상태라고 한다. 피오리노는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 게 위법이라면 나는 기꺼이 몇 번이고 그런 죄인이 되겠다”며 법보다 사람의 도리가 우선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참사 현장으로 달려간 사람은 또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 즉위 후 첫 외부 공식방문지로 람페두사 난민수용소를 택한 것이다. 람페두사 난민수용소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2012년 유럽의회에 의해 제소되기도 했다. 교황은 준비된 발표문 대신 즉석에서 “보트를 타고 여기까지 온 이들을 위해 누가 함께 울어줄 것인가”라며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세태를 질타하는 연설을 했다. 이번 람페두사의 비극은 이른바 ‘요새 유럽(Fortress Europe)’이라는 표현으로 집약되는 유럽연합(EU)의 폐쇄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박해의 절박한 위험을 피해 고국을 떠나는 난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향을 등지는 이주자를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불법(illegal)’ 체류자로만 바라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미등록(unregistered)’ 이주자일 뿐이다. 더구나 물에 빠진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구출부터 해야 한다.

염운옥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