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SOC 예비타당성조사에 구속력 부여해야
입력 2013-10-27 17:50
아직도 도로 공화국인가. 지방에 가면 차량왕래가 거의 없는 텅 빈 4차선 도로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비슷한 노선으로 고속도로를 새로 내는 곳이 많다. 멀쩡한 옛 국도가 방치된 채 폐도가 돼 버린 곳도 적지 않다. 27일 조정식 민주당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올해까지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은 23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공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23개 사업의 총사업비는 11조2455억원으로 현재까지 지원된 정부 예산은 3300억원이라고 한다. 앞으로 약 11조원이 더 투입될 예정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들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B/C)이 대부분 0.5 안팎을 넘지 못했다. 타당성 없는 사업에 혈세를 들이붓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더군다나 정부 재정 상태가 계속 악화될 전망이어서 각 부문에서 허리띠 졸라매기가 한창이다. 그런데도 ‘명절에만 이용되는’ 도로 건설의 기세는 왜 멈추지 않는 것인가.
예비타당성 조사의 경우 경제성 분석(B/C) 결과를 토대로 정책적 분석과 지역 균형발전을 합산해 종합평가(AHP)를 내린다. AHP가 1을 넘으면 사업을 추진하고, 1을 넘지 못하더라도 0.5를 초과하면 사업 추진의 명분을 찾을 수도 있다. 0.5를 넘지 못하면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는다. 문제는 0.5 이하라도 사업 추진을 막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법적 구속력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임의로 면제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허점이다. 조사 면제기준을 구체화하고 절차를 투명화할 필요가 있다.
안동∼영덕 간 고속도로는 B/C 0.56, AHP 0.476으로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았지만 총사업비 1조9130억원 중 256억원의 예산이 이미 투입됐다. 타당성이 낮은 사업에 대해서는 사전 심층 평가를 추가로 요구하는 등 검증 절차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이라도 검증 결과가 심각하게 나쁜 경우 지금이라도 사업을 접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