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결혼과 빈부격차

입력 2013-10-27 17:50


미국은 잘사는 나라다. 동시에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가 매우 큰 나라다.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유럽 같은 복지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오히려 장기간 감세정책을 펴서 부자를 더 큰 부자로 만들었다. 기술혁신과 세계화는 역설적으로 중산층 기반인 제조업 일자리를 앗아갔다. 여기에 최근 들어 또 하나의 원인이 거론되고 있다. 미 월간지 ‘애틀랜틱’이 최신호에서 빈부격차와 직결된 문제로 꼽은 것은 결혼이다.

부부가 함께 살며 자녀를 키우는 평범한 미국 가정의 지난해 평균 수입은 8만1000달러(약 8602만원)였다. 3만5000달러 수준이던 1950년에 비하면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많이 증가했고 꾸준히 늘고 있다. 이렇게 늘어난 수입은 어디서 온 걸까. 평범한 미국 가정을 좀 더 세분화하면 맞벌이와 외벌이로 나뉜다. 맞벌이 가정은 지난해 평균 9만 달러 이상 벌어들인 반면 남편 외벌이 가정은 5만 달러에 그쳤다. 반세기 동안 미국 가정의 평균 수입을 배 이상 늘려준 건 아내들이다.

1+1=2. 혼자보다 둘이 버는 게 낫다는 이 간단한 산수가 빈부격차란 사회현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평범함’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는 남편이 밖에서 돈을 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해야 평범했다. 기혼여성의 68%가 전업주부였다. 이 비율이 지난해 30%까지 줄어드는 동안 맞벌이 가정은 19%에서 44%로, 싱글맘·싱글대디 가정은 13%에서 26%로 배 이상 늘었다. 요즘 미국 가정의 유형은 맞벌이 44%, 외벌이 30%, 싱글맘·싱글대디 26%로 절대적 평범함이 사라졌다.

지난해 유형별 평균 수입은 맞벌이(9만1779달러)〉외벌이(5만881달러)〉싱글대디(4만2358달러)〉싱글맘(3만686달러) 순이다. 맞벌이와 나머지 가정의 소득 격차는 미국 경제가 고속성장을 멈춘 1980년대부터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1980∼2012년 외벌이 수입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고작 1% 증가에 그쳤고 싱글맘·싱글대디도 비슷한데, 유독 맞벌이 가정만 30% 가까이 늘었다. 성장이 둔화되면서 남편 월급 늘 일이 별로 없는 터에 아내가 돈 버는 집만 소득이 불어난 것이다.

직업을 가진 여성과 결혼해서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이제 미국에선 고소득층에 진입하는 지름길이 됐다. 그런데 애틀랜틱은 미국 사회에 ‘결혼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활동 여성의 비율은 최근 60%까지 증가했지만 모든 계층에서 그렇지는 않다. 고학력·고소득일수록 많고 그런 여성은 비슷한 배우자를 찾는다. 맞벌이 효과로 한번 잘살아 보려는 시도 역시 아무나 못하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최근 주민 조사를 통해 1인 가구가 1980년 이후 10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350만 가구 중 85만 가구나 된다. 서울 여성의 39.4%는 “결혼은 선택사항”, 41.8%는 “이혼은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11만4781쌍이 이혼했다.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고 결혼연령은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반면 경제는 고성장을 멈췄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에 그쳤고 올해도 3%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0%를 웃돈다. 이제 우리도 ‘아내의 힘’이 가정의 경제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가사와 육아 부담은 여전히 아내가 하루 3시간13분, 남편은 29분이라고 한다. 한국 남성들은 용감하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