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볼리비아 전명진 선교사]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사역, 이소소 지역 선교
입력 2013-10-27 18:48
오지 과라니족 자립 위해 양계장 만들어 줬더니 잡아먹고 팔아먹어 허탈…
2002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귀한 사역 가운데 하나는 과라니족 사역이다. 이소소라는 지역은 볼리비아와 파라과이가 100년 동안 전쟁을 했던 곳이다. 이곳은 우리가 활동하는 산타크루스에서 동남쪽으로 약 400㎞ 떨어진 곳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이다.
이소소에 사는 과라니족은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중심으로 살던 사람들인데 과라니어를 모국어로 한다.
이곳은 비포장 도로를 이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비가 오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한다. 한번은 하루 꼬박 차로 달려 도착한 적도 있고 비가 와서 나오지 못한 적도 있다. 그곳을 사역지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못 살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도우라고 이끄셨다.
처음 선교를 시작할 때의 일이다. 볼리비아 순복음교회 성도들과 현지인 교역자 20여명이 5대의 차량에 타고 선교를 가게 되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 일부는 ‘다음 기회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이미 계획을 세워놓은 상태이고 현지에 연락까지 해놨기 때문에 어려워도 가야 했다. 그런데 절반 정도 왔는데 문제는 비가 퍼붓는 것이었다.
뒤에서는 ‘아무래도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불평을 하는데 점점 난감한 상황이 됐다.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목적지까지 갑시다.” 그런데 자동차가 모두 4륜 구동이었지만 모두 진흙탕에 빠지고 미끄러지는 일이 벌어졌다. 빠진 차량은 밧줄에 묶어 끌어내는 등 힘겹게 24시간 만에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을 때였다.
“부르릉.” 얕은 물인 줄 알고 그냥 지나가려는데 내가 탄 차가 웅덩이에 빠져 잠길 정도가 됐다. 정말 하늘이 노랗고 나 자신이 원망스럽고 눈물이 났다. 뒤에서는 불평소리도 들렸다.
밧줄을 묶어 겨우 몇 시간 만에 차를 끌어냈다. 이소소에 도착하고 나니 ‘내가 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허탈감이 밀려들었다.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선교란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역을 마치고 돌아가면서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나는 선교 사역을 하면서 한번 계획을 세우면 아무리 어려워도 꼭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12년 전 이소소에 들어와 처음 시작한 것은 나무그늘 밑에서 통나무를 잘라 강대상을 만들어 예배를 드린 것이다. 이후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다 조금씩 성장해서 3년 뒤 성전을 짓고 숙소를 지어 선교 사역을 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선 4년 전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허락하셨다.
과라니족은 인디언 계통의 사람들로 게으르고 받기만을 좋아했다. 무책임과 게으름은 이들에게 최대의 숙제였다. 사역을 하면서 선교 자립을 우선시했다. 양계장을 만들어주면서 자립 기반을 제공했지만 갈 때마다 닭들이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하니 닭을 계속 잡아먹고, 팔아먹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한심한 사람들인지 닭장 철망마저 뜯어서 팔아먹을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주민들을 정말 쥐어박고 싶었다. 채소를 심게 해서 조금이나마 자립 의지를 심고자 했지만 결국 게으르고 무책임한 이들의 손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 이소소 지역은 물과 전기가 없다.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하면서 생각했다. ‘이들이 잡아먹지도 못하고 팔아먹지도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미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묘목원에 오렌지, 레몬, 귤 등 유실수를 심는 것이었다. 개량종 유실수이기 때문에 열매도 좋고,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사역이었다. 4년 전부터 ‘이소소 새마을 사업’이라고 명명하고 진행했다.
새마을 사업을 시작하면서 구입한 나무는 1만2000그루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약 2000그루. 개미, 벌레, 염소, 돼지, 물과의 전쟁이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게으름과의 전쟁, 운송 과정의 전쟁, 부패한 관리와의 전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무를 심은 지 3년이 넘으면서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다.
이곳에서 사역하면 많이 모일 땐 1000명, 적게는 500명이 모인다. 아이들이 50%, 청소년이 25%, 장년이 25%정도 된다. 어린아이들과 젊은 사람이 많은데 NGO인 굿피플과 손잡고 일하고 있다.
문제는 주민들이 게으르고 노력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모래가 많은데 우기에만 강가에서 농사를 짓고 그 외에 하는 일이 없다. 너무 가난하고 도시와 단절돼 3만명의 사람이 여기저기 살고 있음에도 생필품을 구할 수 없다. 설령 조그마한 구멍가게에서 물품을 구한다 하더라도 2배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교통이 너무 안 좋은데다 운반 자체가 힘들어 살아가기가 아주 어려운 곳이다.
하나님께선 이곳 사람들을 너무 사랑하시기에 우리 교회를 통해 이들에게 혜택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이곳 청년들을 사역 초창기부터 데려다 볼리비아 영산신학교에서 장학금을 주고 공부를 시켰다. 기숙사와 지교회에서 공부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들을 섬기는 것은 다시 자기 동네로 돌아가 낙후된 이소소 지역을 발전시키고 복음화시키기 위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 정부와 추장 및 인디언 지도자들이 고마워하고 있다.
지난 2009년 김성혜 한세대 총장이 볼리비아를 방문했을 때 과라니족 학생 100명에게 장학금을 약속했고 지금도 지원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정부에서는 2010년 김 총장과 나에게 대통령 감사패를 수여했다. 지금도 30명의 과라니족 학생이 볼리비아 베데스다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요즘 기도하고 있는 사역 중 하나가 샤가스병 퇴치 사역이다. 이곳 이소소 사람들은 모두 흙으로 된 초가집에 산다. 문제는 흙벽에 벌레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빈추카라는 벌레인데 지푸라기 지붕과 짚으로 만든 매트리스에 주로 서식한다. 빈추카는 밤에 주로 활동하는데 사람의 얼굴과 목을 주로 문다. 빈추카는 칼 같은 예리한 침을 사용해 피부를 찌르고 몸 안에 알을 깐다. 그게 혈관을 타고 들어가 사람의 장기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신생아에게도 산모의 혈관을 통해 빈추카의 알이 전염되기도 한다.
빈추카의 알이 최종적으로 머무르는 곳이 심장인데 이 병에 걸리면 갑자기 발작을 하고 사망한다. 오랜 잠복기간 때문에 ‘침묵의 병’으로 불리는데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이 지역 주민 중 80%는 샤가스병에 걸려 있다. 중남미 지역에선 최소 2000만명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지역 최대 문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피검사를 하면 샤가스병 감염 여부를 판별해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예방주사나 치료법이 없다. 결국 기와와 벽돌을 사용해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밖에 없다. 근본 원인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게 최선책이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방향을 잡은 것이 유실수를 심고 그 수익으로 잼 공장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주택개량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전명진 선교사
● 전명진 선교사
-1957년생. 대한신학교, 볼리비아 순복음신학교, UNPI 졸업
-기하성 여의도순복음 소속, 1988년 2월 파송
-볼리비아 한국하나님의성회 법인 설립
-한인 및 현지인 목회자 재교육 사역, 볼리비아 영산신학교, 볼리비아 베데스다대, 고아원 운영, 인디언(과라니족) 새마을운동, 진료소 운영, 라디오 방송, 굿피플 어린이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