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의 정치학] 사거리 1만㎞ 오차율 수십㎝ ‘족집게 타격’

입력 2013-10-26 04:00


현대 전쟁의 최종병기로 불리는 미사일은 2차 세계대전 때 첫선을 보인 뒤 70여년간 눈부시게 진화했다. 초기 300㎞에 불과했던 사거리는 1만㎞ 이상으로 대폭 늘어났고 정확도가 떨어져 목표물을 제대로 못 맞히고 엉뚱한 곳에 떨어져 비아냥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도가 뛰어나 ‘족집게 병기’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진화하고 확산되는 미사일=미사일을 전쟁에서 처음 사용한 나라는 독일이다. 2차 세계대전 시 영국 공군에게 제공권을 장악당해 곤경에 처했던 독일은 절치부심해 만들어낸 신무기 V-1과 V-2로 영국에 무차별적인 보복을 했다. V는 보복을 의미하는 독일어(Vergeltungs)의 머리글자다. ‘쉬잇’ 소리를 내며 초음속으로 비행해 느닷없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V-1은 비교적 작은 크기로 ‘날아가는 폭탄’ 수준이었지만 V-2는 고도 100㎞ 이상의 외기권까지 비행할 수 있는 길이 약 15m의 대형 로켓이었다. 신무기 개발로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을 긴장시켰지만 신무기의 파괴력은 크지 않아 독일은 기울어가는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전쟁에 패한 독일은 천재 과학자 폰 브라운이 주도한 앞선 미사일 기술을 미국과 구(舊) 소련에 넘겨줘야 했다. 당시 독일이 개발한 대형액체추진로켓엔진기술과 초음속공기역학기술, 추력조종기술은 지금도 미사일 제작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만큼 뛰어난 기술이었다.

미국은 노획한 V-2와 폰 브라운 팀을 활용해 앨라배마주 레드스톤 병기창에서 자체 기술로 만든 첫 미사일 ‘레드스톤’을 선보였다. 이후 아틀라스, 나이키-허큘리스, 퍼싱, 토마호크 등 중단거리 미사일에서 사거리가 1만㎞가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LGM-30 미니트맨 500여기를 배치한 세계 최고의 첨단 미사일 보유국이 됐다.

미국에 맞서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인 나라는 구 소련이다. 구 소련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연속되는 폭발음이 마치 오르간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다고 해서 ‘스탈린의 오르간’으로 불렸던 다연장로켓 BM-13을 퍼부어 독일군을 궤멸시키기는 했지만 초기 미사일 기술은 독일 기술진에 의존해야 했다. 소련은 V-2를 모방한 R-1 로켓을 개발한 뒤 독자모델 개발에 들어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스커드 미사일을 제작했고 SS-57 TOPOL-M 등 사거리가 1만3000㎞에 달하는 27종의 ICBM 560여기를 배치해 놓았다.

최근 미사일 강국에 진입한 중국은 초기에는 소련의 기술 지원을 받았지만 미국 로켓기술 개발에 깊숙이 개입했던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의 노력으로 자체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첸쉐썬은 2차 세계대전 말 독일에 파견돼 폰 브라운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중국은 현재 DH-41 등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탄도탄도 제작하고 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대형 액체 및 고체 추진로켓을 제작해 오고 있어 언제든 미사일 제작이 가능하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미사일을 도입한 뒤 모방 개발을 통해 자체 기술을 발전시켜 실크윔 대함미사일뿐 아니라 스커드·노동·무수단·대포동 등 단거리 미사일에서 장거리 미사일까지 확보하고 있는 미사일 강국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9월 사거리 180㎞의 백곰미사일을 개발해 세계에서 7번째로 독자적인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지만 한·미 미사일지침에 묶여 개발이 제한됐다. 지난해에서야 미사일지침 개정으로 사거리 800㎞ 이상의 탄도미사일 개발이 가능해졌다. 순항미사일인 현무 3C는 사거리가 1500㎞에 달하지만 북한과 비교하면 미사일 분야에서는 현격한 열세에 있다.

2010년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Ballistic Missile Defense Review)’는 “미사일 기술 확산에 따른 보유국 수의 증가는 물론 사거리, 정확도 그리고 사용연료 및 발사 방식의 향상으로 인해 탄도미사일의 신뢰도, 생존성, 이동성이 현격히 좋아져 미사일의 위력이 급격히 커졌다”고 평가했다. 현재 미사일을 보유한 국가는 38개국 정도로 추정된다.

공격용 무기 미사일의 창끝은 더욱 예리해지고 강해졌다. 미사일의 정확도도 높아져 오차율은 수십㎝로 줄었다. 거의 모든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또 입력된 자료를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는 목표물까지도 스스로 찾아가 타격하는 스마트형 미사일이 대부분이다.

현대전에서 위력을 떨친 미사일들=프랑스의 대함미사일 엑조세는 82년 발생한 포클랜드 전쟁에서 맹활약했다. 작은 섬 포클랜드를 둘러싸고 벌어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는 엑조세 미사일로 영국 함대 셰필드함과 1만5000t급 대형 전함을 침몰시켰다. 아르헨티나는 전쟁에서 졌지만 엑조세 미사일은 명품 미사일로 인식됐다.

80년 시작돼 8년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이란·이라크전에서는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이 등장했고, 북한이 개량한 스커드 미사일도 다량 사용됐다. 당시 양측이 발사한 스커드 미사일은 1000발이 넘었다. 이란·이라크전에선 양국이 보유했던 미사일이 총동원됐다. 스커드는 물론 프로그, 실크웜, 토우, 호크, 하푼 등이 사용됐던 본격적인 미사일 전쟁이었다.

91년 발생한 걸프전은 토마호크를 비롯해 이전 세대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첨단 미사일들이 대거 동원된 첫 번째 하이테크 전쟁이었다. 패트리엇 미사일과 헬파이어 미사일, 에이태킴스 미사일과 공대공 미사일 스패로도 위력을 발휘했다. 2001년 9월 11일 아랍의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뉴욕 맨해튼 쌍둥이 빌딩 공격이 빌미가 돼 2010년 10월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토마호크, 헬파이어, 토우 미사일이 주역이었다. 특히 주요 작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무인기와 개량된 대전차 미사일 헬파이어였다.

미사일 전문가 박준복 박사는 25일 “적을 원거리에서 제압할 수 있는 미사일 정밀타격 체제 없이는 전쟁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미사일은 전쟁 승리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