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연제부인’의 추억
입력 2013-10-25 18:56
‘삼국유사’에는 대변이 굵어서 왕비로 간택된 여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모량부 동로수나무 아래에서 개 두 마리가 북만한 크기의 똥덩어리를 놓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던 관리가 그 광경을 목격하곤 수소문해서 똥의 임자를 찾고 보니 모량부 재상의 딸이었던 것. 관리는 그 사실을 바로 보고했으며, 지증왕은 수레를 보내 그녀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바로 지증왕의 부인이자 법흥왕의 어머니인 연제부인이다.
6·25전쟁 때 미군들이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는 엄청난 대변의 크기였다.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군들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대변을 누는 것을 보곤 ‘염소똥’이라며 놀려댔다. 그런데 그처럼 적었던 미군들의 배변량은 더 줄어들었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50년부터 1980년까지 30년 동안 미국인의 배변량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한국인의 배변량도 확 줄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6·25전쟁 당시 배변량이 지금의 3배였다고 하니 엄청나게 줄어든 셈이다. 하지만 지금도 예전의 우리 조상만큼 커다란 똥을 누는 사람들이 많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경우 하루에 400g의 대변을 본다. 세계 최고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 파푸아뉴기니 국민들이다. 이들의 하루 배변량은 약 1㎏에 달한다. 서유럽인의 100g에 비해 무려 10배나 많은 양이다.
이처럼 차이가 큰 이유는 서유럽인은 주로 육식을 즐기며, 파푸아뉴기니인들은 채식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채소와 과일, 캐낸 뿌리 등을 그대로 먹으며 곡식도 정제하지 않은 채 먹으니 거의 식이섬유로 배를 채우는 셈이다. 식이섬유는 몸 안에서 소화되지 않음은 물론 자기보다 16배나 되는 물을 머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배변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과 비슷한 배변량을 지닌 아프리카인들의 하루 섬유질 섭취량은 60g 이상이다. 현대 한국인의 하루 식이섬유 섭취량은 1969년 24.5g에서 1990년 17.3g으로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식이섬유 섭취량과 반비례해 늘고 있는 것은 서구형 암으로 알려진 대장암의 발병률이다.
국제암연구소 조사 결과 한국 남성의 대장암 발병률은 10만명당 46.92명으로 아시아 1위, 세계 4위다. 2030년에는 우리나라의 대장암 발병률이 현재보다 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데이터까지 나와 있다. 정부가 ‘연제부인 따라잡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