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美 도청 파문… 가디언 “NSA, 35개국 지도자 감청”
입력 2013-10-25 18:30 수정 2013-10-25 22:31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파문이 확산되면서 24일(현지시간) 개막한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미국 성토장이 됐다.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전날 자신의 휴대전화 도청과 관련,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음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미국과 유럽은 우방국이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상호신뢰 속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면서 “내가 친구 사이에 스파이 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계속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뢰는 이제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의장을 찾은 다른 유럽 정상들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프레드릭 라인펠트 스웨덴 총리는 “동맹 국가의 지도자를 도청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도 “메르켈의 휴대전화가 도청 당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EU 정상회의는 이날 “우호 관계는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보 수집 분야에서 필요한 협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은 조만간 더 많은 외국 정상과 정부들의 비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NSA가 정부 관료로부터 외국 지도자 35명의 연락처를 넘겨받아 이들의 전화통화를 엿들었다고 보도했다. 전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유출한 NSA의 내부 기밀 회람 문건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가디언은 이들 지도자의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지만 2006년 10월 NSA의 신호정보부(SID) 직원들에게 이들의 전화번호가 회람된 직후부터 도청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프랑스와 독일이 연말까지 미국과 정보관계에 대한 새로운 규칙들을 합의하기 위한 회담 개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스노든이 폭로한 NSA의 감청 문제에 대처하고자 EU의 특별팀이 이미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NSA의 도청 의혹이 유럽에 집중되면서 EU·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U는 시민의 정보를 미국으로 전송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