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규의 성서 한방보감] 어혈
입력 2013-10-25 17:26
어혈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독특한 용어다. 어혈은 혈액의 흐름이 막혀서 경맥(經脈) 내에 머물러 있거나 혈액이 경맥 바깥으로 새어나오거나 기관 내에 쌓여 제거되지 않으면 형성된다. 일단 어혈이 형성되면 발병인자가 형성돼 계속 기(氣)의 운행을 막고 장부의 기능을 조절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어혈은 자흑색이고, 비교적 강한 응고성과 취집성(聚集性)을 가진다. 어혈이 체내에 쌓이면 순환기능에 장애가 되므로 동통(疼痛)을 일으킨다. 어혈은 주로 기허(氣虛)·기체(氣滯)·혈한(血寒) 및 부적당한 음식생활 등으로 혈액이 소통되지 않고 응고되어 막혀서 생긴다. 또 혈열(血熱)·외상·출혈 및 기타 원인으로 내출혈이 일어났을 때 삭히거나 배출되지 못함으로써 형성된다. 어혈에 대한 한의학적인 설명이다.
한마디로 어혈이란 나쁜 피가 풀어지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맺혀 있는 것을 말한다. 어깨에 어혈이 생기면 어깨가 아프고, 허리에 어혈이 생기면 요통이 오며, 아랫배에 어혈이 생기면 자궁과 그 부속기관에 장애가 온다. 피부에 어혈이 오면 각종 반점과 피부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릇 혈이란 기의 짝이기 때문에 기 순환이 잘 되면 혈도 잘 돈다. 반면에 기가 체해서 순환이 잘 안되면 여기저기 어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운동이 부족하면 기 순환이 잘 안되어 어혈 질환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어혈로 오는 통증의 특징은 운동성이다. 어혈은 나쁜 피가 응집되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움직이면 덜해지고 가만있으면 더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허리가 아픈 사람도, 어깨가 아픈 이도, 가슴이 아프거나 결리는 사람도 가만히 있으면 더 심해지는 것이 어혈이다. 낮에 돌아다닐 때는 모르다가 밤에 잠잘 때 아프다든지, 잘 자고 새벽에 일어날 때 몹시 아파서 힘들어하면 어혈이다. 한방에선 이것을 모두 어혈로 본다.
움직이면 어혈된 부분이 풀어져서 혈액순환이 되다 가만있으면 한 곳으로 몰려들어 어혈이 또 생기기 때문이다. 항간에 피만 뽑으면 되는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어혈을 푼다고 여기저기 피를 뽑아서 고생만 하는 사람을 적잖이 봤다.
깊은 어혈은 약으로 푼다. 잇꽃이라고 불리는 홍화가 어혈에 좋다. 홍화는 빨간 꽃인데, 꽃잎을 달여 먹으면 나쁜 피, 어혈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당귀나 천궁도 피를 맑게 하고 순환을 잘 시키기 때문에 어혈이 있는 환자들에게 좋다.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계지(계수나무 가지)도 약재 중 하나다.
물론 충격이나 타박 등 외상에 의해 겉으로 생긴 어혈은 침으로 피를 뽑아 치료한다. 어혈은 오래되면 다른 병으로 변할 수 있다. 암이 되기도 하고 만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빨리 풀어주어야 한다.
영적으로 어혈은 어떻게 볼까. 사람과의 관계에 막혀 있는 것이 어혈 아닐까. 사랑하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용납하는 마음이 없이 사람과의 관계가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자연히 막혀 있는 것이 어혈 아닐까.
기가 순환이 잘 되면 어혈이 풀어지듯 사랑의 힘으로 영적인 어혈을 풀어야 한다. 영적으로 맺히고 막힌 것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의 원리가 아니면 풀어낼 수 없다. 보기 싫은 사람 안 보면 되고, 상대하기 싫은 사람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고개 돌리고 외면하며 거부만 해대면 평생 영적인 어혈에서 풀려날 수 없다.
로마서 15장 1절 말씀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법이다. 약한 자는 토라지고 섭섭해만 할 뿐 결코 먼저 손 내밀지 못한다. 영적인 어혈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막힘, 어혈을 두려워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힘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김양규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