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어제의 종교개혁과 오늘의 종교개혁
입력 2013-10-25 17:27
몇 년 전 동유럽 종교개혁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당시 개혁자들이었던 후스(John Huss)나 칼빈(John Calvin) 그리고 루터(Martin Luther)의 흔적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신학과 신앙,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목숨까지 건 놀라운 역사적 현장은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루터의 95개 조항의 항의문이 걸린 비텐베르그교회, 그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파문당하고 웜스 국회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고 했던 말 “내가 여기 있사오니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는 글이 쓰인 장소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역사적 사건으로서 종교개혁
금년이 종교개혁 496주년 되는 해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95개조의 항의문을 비텐베르그교회 정문에 게시한 때를 기준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교회는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킨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 약간의 차이는 있긴 했지만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등 주요 주장은 동일했다.
당시 교회의 타락은 극에 달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면죄부 판매다. 면죄부는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 완공에 필요한 막대한 공사비를 충족하기 위해 판매를 강권한 것이다. “속죄권을 사면 즉시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사면 그 동전이 헌금함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쳤다. 동시에 성직 매매가 성행했고, 신부들의 독신생활은 해이해졌다. 신부들의 도덕적 문란은 지탄의 대상이었다. 그 외에도 교황 무오나 성찬의 화체설 등은 성경에서 벗어난 교리들이었다.
루터를 비롯한 개혁자들은 당시 교회의 비성경적 교리 주장과 도덕적으로 부패한 교회를 향해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외쳤다. 루터에 의해 시작된 개혁운동은 여기에 동조하는 많은 개혁자들을 통해 독일 외에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오늘의 다양한 개혁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16세기 종교개혁의 내용이다. 문제는 그렇게 세워진 개혁교회, 특히 오늘의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오늘도 필요한 개혁정신
496년 전 있었던 종교개혁을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 치부하며 그 사건을 한번 회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베자(Theodore Beza)는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했다.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오늘의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 중세 교회에 개혁 대상이었던 잘못된 신학사상이 있었듯 오늘도 교회 내에는 성경에서 떠난 잘못된 사상들이 존재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제일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종교다원주의 사상이다. 즉 기독교 구원의 절대성을 버리고 모든 종교는 동일한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그릇된 사상이다. 그 외에 잘못된 성경관과 교회 본질에서 떠난 목회다.
이와 더불어 한국교회가 개혁해야 할 중대한 문제는 교회의 세속화와 윤리적 타락이다. 오늘의 교회가 심각한 윤리적 타락상을 보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교인들의 비윤리적 행태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개혁은 그 대상이 목회자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개혁을 시작해야 할 주체 또한 목회자다. 개혁이 쉽지 않은 이유다.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며 염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교회의 위기는 목회자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목회자의 위기는 무엇인가. 먼저는 소명감 상실이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거룩성 상실이다. 교회는 거룩한 공회이며 목회자의 삶은 거룩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현 목회자들이 너무 세속화되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니버(Reinhold Niebuhr)는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인 종교개혁이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축복된 자녀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개혁교도라는 것을 자랑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를 짓눌렀던 미신을 행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고,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 특별히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교회가 개혁을 위한 땀방울을 흘리는 데 인색한 것을 경고한 말로 보인다. 종교개혁 주일에 다시 한번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정신으로 한국교회가 개혁의 정신을 구현해야 할 것이다.
김경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서현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