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1만원짜리 송사
입력 2013-10-25 17:37
1977년 11월 서울 관악경찰서 내 공중전화로 통화를 하려던 김성수씨는 전화기가 고장나 10원만 삼킨 채 통화가 안 되자 국가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인지대 2원과 송달료 1320원 등 1322원의 소송비용이 들었다. 이듬해 1월 서울민사지법은 “국가가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분명하다”며 “10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95년 8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는 정계은퇴를 번복해 국민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김규봉씨에 의해 피소됐다. 그가 청구한 위자료는 단돈 1만원. 12·12사태와 5·18 광주항쟁과 관련해 전두환, 노태우, 법정증언을 거부한 최규하 전 대통령도 같은 혐의로 피소됐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공인, 특히 정치인들이 정략에 따라 언행을 바꾸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지 않으면 민주주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일갈했다.
1만원 때문에 송사가 벌어진 경우도 있다. 97년 1월 경남 마산에 살던 최현영씨는 서울 안국동 정형외과를 찾아가던 중 잘못된 도로표지판 때문에 차선이 끊겨 노란색 안전지대로 대피했다가 경찰한테 과태료 1만원과 벌점 10점을 받았다. 그는 서울 종로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항소심은 위자료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는 재판 후 “무성의한 공무원과 경직된 공직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위자료 30만원과 이자 5만540원을 난치병을 앓는 소년에게 기부했다.
‘신정아 스캔들’로 공직에서 물러난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부부의 허위 진술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1만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24일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변 전 실장은 신정아 사건 당시 김 전 회장으로부터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도와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추가기소됐다가 2009년 1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뒤 소송을 냈다. 1심에서 패소한 뒤 청구 금액을 3억원에서 1만원으로 낮춰 항소했었다.
‘10원 송사’나 ‘1만원 송사’가 눈길을 끄는 것은 돈키호테 같은 엉뚱함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거나 억울함을 풀려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소송 금액이 수천억원에 달하고 인지대만 수억원인 재벌가의 상속재산을 둘러싼 송사보다 공감이 간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