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문·이과 통합 "물건너 갔다"…정치권서 우려 나오자 후퇴

입력 2013-10-25 04:51

수험생 부담 줄었지만…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을 2021학년도 이후로 미룬 것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한 결과다. 표면적으로는 교육 현장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정권마다 대학입시 제도에 손을 대면서 학부모·학생의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융합인재 양성’ ‘획기적 입시부담 완화’ 둘 다 충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결론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불투명해진 문·이과 통합=문·이과 통합을 위해서는 먼저 교육과정을 통합교육에 적합하도록 고쳐야 한다는 것이 교육부 판단이다. 따라서 현행 ‘2009 개정 교육과정’을 바꾸는 작업을 연말부터 착수하고 내년 8월까지 교육과정 총론을 만들 계획이다. 이어 2015년 5월까지 각론을 개발해 ‘2015 개정 교육과정’을 완성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교과서 개발·검정을 2017년 8월 완료하고 2018년 고교 1학년생부터 새로운 교육과정을 적용해 이들이 수능시험을 치는 2021학년도 문·이과 통합 수능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다음 정부로 미뤄지면서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것이 교육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명박정부가 도입한 수준별 수능은 이번 정부 들어 폐기됐으며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의 수능 영어 도입도 수백억원 예산만 낭비하고 백지화됐다. 또한 교육부 내부에서도 당초 2017학년도 문·이과 통합안을 가장 유력하게 검토했다가 정치권 등에서 우려가 나오자 후퇴하는 등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7학년도 수능, 2013학년도로 회귀=2017학년도 수능은 수준별 수능 도입 전인 지난해(2013학년도)로 돌아간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다. 큰 변화라 한다면 한국사가 사회탐구 영역과 별도의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는 점이다.

한국사는 수험생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대평가 9등급제로 반영된다. 절대평가는 수험생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4%까지는 1등급, 7%까지 2등급 등으로 성적을 매기는 게 아니라, 일정 점수 이상을 얻으면 모두 1등급을 준다. 교육부는 내년 상반기에 모의고사 등을 시행해 등급 구간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수험생 부담이 줄어든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이사는 “1, 2점 차이로 등급이 달라질 수 있어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폐지를 검토했던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유지된다. 다만 백분위가 아닌 등급만 최저기준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최저기준을 없애면 대학들이 변별력 확보 차원에서 논술 비중을 확대하고 학생부 위주인 수시 비중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상위권 대학들의 요구를 교육부가 수용한 측면이 있으며, 학교생활·특기·소질 등을 정성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수시모집의 취지에서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부는 기재 방식을 바꾸고 허위 기재 징계를 강화했다. 신뢰도를 높여 대학들이 학생부를 실질적으로 반영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기재항목별 글자 수를 절반 가까이 줄여 부풀리기를 줄이고, 교사가 허위 사실을 적었을 경우 성적 관련 비위로 간주하기로 했다.

내신 성적을 절대평가로 A~E 5개 등급으로 나누는 성취평가제의 대입 반영은 2018학년도까지 유예하고 2015년에 도입 여부를 확정키로 했다. 당초 2019학년도까지 유예, 2016년 결정에서 각각 1년씩 앞당겨졌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2017학년도 대입제도 발표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응시하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현행 수능 체제로 치러지게 됐다. 처음으로 필수과목에 포함된 한국사는 수험생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성적을 제공한다.

교육부가 24일 확정·발표한 2017학년도 대입제도는 기존 방식과 큰 변화가 없다. 지난 8월 27일 3가지 시안을 내놨던 교육부는 여론 수렴을 거쳐 현 수능 골격을 유지하는 1안을 선택했다. 2안과 3안에 포함돼 관심을 모았던 수능 문·이과 융합안은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이 대학에 가는 2021학년도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문·이과 융합의 과제는 사실상 차기 정부로 넘겨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2안과 3안을 더 많이 지지하는 여론조사도 있었지만 융합안에 대한 거부감도 컸기 때문에 1안이 됐다”며 “하지만 다음 달부터 융합안 교육과정 개발에 착수해 2018학년도부터는 교육과정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과정이 개편되면 자연스레 수능 체제도 바뀔 것인 만큼 2021학년도 수능부터는 융합안 도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확정안에 따르면 2017학년도 수능의 국어와 영어는 문·이과 공통 문제가 출제되고 수학은 문과 나형, 이과 가형으로 구분된다.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는 현행처럼 2과목까지만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수능(2013학년도 수능)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한국사 성적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측정해 9단계 등급만 제공하기로 했다. 절대평가는 일정 점수 이상을 얻으면 모두 1등급을 주는 방식이다. 교육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출제경향과 예시문항 등을 개발해 일선 학교에 안내할 방침이다.

수능일은 11월 셋째 주로 정해졌고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방식은 일부 변경하기로 했다. ‘부풀리기’ 기재를 막기 위해 학생부 각 항목의 입력 글자수를 현재의 절반 안팎으로 줄이는 한편 진로희망사항 관련 기재는 강화하고 예체능 활동 영역은 신설하기로 했다.

폐지가 검토됐던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폐지 대신 완화하는 선에서 대학들이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되 수능 등급만 사용하고 백분위는 사용하지 않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