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새 언약에 참여한 성도
입력 2013-10-24 18:25
예레미야 31장 27∼34절
종교개혁의 달인 10월을 맞는 우리의 믿음은 말씀이 중심이 돼야 하고 그 말씀은 삶을 통해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말씀인 예레미야 31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과 구원을 선포하는 예언입니다.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진 그는 이스라엘의 불확실한 미래를 예견하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참담한 심정으로 멸망하는 조국을 지켜봤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으며 희망적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멸망을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백성들은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일에 골몰했습니다. 자손들이 조상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는 내용의 속담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 때문에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죄 중에 제일 무서운 죄는 죄를 알지 못하는 죄입니다. 죄를 알지 못하면 그 죄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평소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사실만 믿고 자신들의 불행한 현실을 실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덮어쓰고 있으면서도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철저히 미워하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떠올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죽을 수밖에 없게 한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처절하게 고민했던 사람이 500여년 전의 마르틴 루터입니다. 적어도 좁은 다락방에서 로마서를 밤새도록 읽고 또 읽고 강해했지만 성령이 강림하기까지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루터는 ‘의인은 오직 믿음 때문에 사는 것’(롬1:17)이라는 위대한 진리를 재발견함으로써 중세의 막중한 교권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같은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옛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약을 깬 것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항상 기억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또 희망을 갖는 명분이 됩니다. 33절이 그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가 매일 죄를 지으며 살지만 하나님은 우리 심장 중심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시고 용서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던 당시 열 번째 재앙 때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 집 문설주에 있는 양의 피를 보고 유월, 즉 죽음을 뛰어넘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유월의 역사를 예레미야가 다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의 모든 성도는 이 새 언약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의지로는 지키기 힘든 언약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한 약속이 됩니다. 그 새 언약은 우리의 심령과 마음에 기록하는 것입니다. 옛 언약이 사람들의 죄를 찾아내고 감시하여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면 새 언약은 그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영원한 새 언약에 참여한 성도로서 멸망의 자리로부터 구원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이름을 영원토록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한영복 목사 (복음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