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도청 항의… 오바마, 피하고 싶은 나날들
입력 2013-10-24 18:26 수정 2013-10-24 22:3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말 피하고 싶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3일(현지시간)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이날 오전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전화를 받았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 발표에 따르면 통화에서 메르켈 총리는 미 정보기관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게 맞는지 즉각적인 해명을 요구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과 미국은 수십년에 걸친 우방으로서 정부 최고 지도자의 대화를 엿듣는 일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독일에 대한 미국의 감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명확히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독일 정부는 미 국가안보국(NSA)의 메르켈 총리 휴대전화 도청 의혹과 관련, 미국 대사를 소환키로 했다고 24일 밝혔다. 독일 외무부 대변인은 “귀도 베스터벨레 외무장관과 존 에머슨 독일 주재 미 대사의 만남이 양국 간 상황을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 백악관은 과거 메르켈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은 채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와의 통화에서 “현재는 휴대전화를 엿듣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도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지난 7∼8월 미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내용을 게재했던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추가 취재를 통해 메르켈 총리 도청 가능성을 알렸다. 이를 분석한 연방정보국(BND)을 비롯한 독일 당국은 미국과 정면충돌하는 것도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우방국 정상으로부터 이처럼 ‘거친’ 항의전화를 받은 것은 이번 주 들어 두 번째다.
21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도 전화통화를 하고 미 정보기관의 감시활동 논란에 대해 해명한 바 있다. 더욱이 올랑드 대통령은 24∼25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정상회의 주요 의제로 유럽국가에 대한 미국의 스파이 활동을 다룰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에서는 건강보험개혁(오바마케어)의 인터넷 웹사이트 장애가 장기화되면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오바마케어 폐지를 내걸며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정지)까지 초래해 수세에 몰렸던 공화당 지도부는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존 베이너(공화·오하이오) 하원의장은 이날 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바마케어로 인한 위협이 미국 경제를 젖은 담요처럼 뒤덮고 있다. 오바마케어 신규 가입자보다 건강보험 해약자가 더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에릭 캔터(버지니아)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오바마케어는 출발부터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비판했으며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캐슬린 시벨리어스 복지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오바마케어의 개인 강제가입 시한을 6개월 이상 늦출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편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이날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파키스탄 영토에서 무인기 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2011년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작전 이후 냉랭해진 파키스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열린 이날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다시 건드린 것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