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검찰 지휘체계·내분 막고 野공세 무마

입력 2013-10-24 18:10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24일 “국민들께 송구하다”며 취임 이후 첫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국가정보원 수사를 놓고 검찰 내부 지휘체계가 흔들리고, 수사팀과 법무부 간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황 장관 본인도 국정원 특별수사팀의 ‘항명’과 수사 외압 의혹 제기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황 장관은 이날 오전 직접 입장을 적어 법무부 대변인실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황 장관은 사과의 말 이후 바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최근 검찰 내분의 성격을 정치적인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야당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부각시키기 위해 검찰 수사를 이용하고 흔들려 한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수사팀이 지난 21일 국민 이목이 집중될 국정감사를 코앞에 두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고 공소장 변경 신청을 감행한 데 대한 우회적 불만 제기로도 읽힌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도 국감장에서 “법치의 영역은 법치에 맡겨주시고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를 바란다”고 의원들에게 말했다.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법무·검찰 상층부의 시각을 보여준다.

황 장관은 자신이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 부분은 여러 차례 (외압은 없었다는) 얘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야당 측이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외압 논란에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황 장관은 대신 검찰 혼란 수습과 남은 수사·재판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황 장관이 사과한 ‘검찰의 불미스러운 일’이란 수사팀이 내부 절차를 어기고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수사팀장이 공개석상에서 상급자를 직접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한 ‘송구함’에 한정된다는 분석이 많다.

황 장관이 야권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압박하는 상황을 고려해 먼저 사과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전날까지 공식 대응을 하지 않던 황 장관이 청와대와의 사전교감 속에 입장을 밝혔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최근 상황과 관련해 언론에서 계속 문의가 오고 있어 장관께서 입장을 정리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흔든 장본인이 남의 얘기 하듯 하고 있다”며 “황 장관이 사퇴하지 않고 또 다른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수사 지휘라인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만으로도 검찰은 이미 독립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정치적 중립을 위해 검찰 수뇌부는 후배 검사에게 견고한 방패막이가 돼야 하고 ‘독립관청’으로서 역할을 회복시켜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