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 전교조 법적 지위 모두 박탈… 노·정관계 경색 불가피
입력 2013-10-24 18:05 수정 2013-10-25 00:32
정부는 2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대해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해직자를 배제하고 위법한 규약을 개정하라는 시정명령을 거부한 데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법적 지위를 모두 상실하게 돼 단체교섭권 등이 박탈되고 향후 교육부의 업무 복귀 명령에 따라 전임자들이 일선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법외노조는 부당해고 구제 등 노조법이 정한 보호를 받지 못할 뿐 불법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전교조는 “박근혜정권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노동기본권을 말살하기 위한 의도”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와 함께 전교조는 촛불집회와 서명운동 등을 벌이기로 하는 등 여론전에 착수했다. 전교조는 향후 연가 투쟁 등에 돌입한다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어 교육 현장의 파행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에 ‘법상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방하남 노동부 장관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3년이 넘도록 법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지도해 왔다”며 “전교조가 법을 어기면서 교육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경우 법에 따라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직자 노조 가입이 사태의 출발=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하는 근거가 된 것은 해직자의 조합원 가입을 불허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이다. 교육부가 파악하는 전교조 조합원 중 해직자는 22명이다. 노동부는 이 중 노조 집행부 등에서 활동하는 9명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이 시행령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이 시행령의 법외노조 통보 관련 부분을 삭제할 것을 권고했고, 지난 22일 재차 성명을 내고 과잉금지원칙과 국제적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전교조를 비롯한 노동계와 야당은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것은 국제적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교사와 공무원의 결사의 자유 및 노조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3차례 권고와 3차례 긴급개입을 통해 해당 조항의 개정을 권고했다.
노동부도 해당 조항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를 수차례 언급했다. 방 장관은 지난 3월 인사청문회 당시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등 제도개선과 관련해 국제적인 기준 및 외국 사례 등을 검토한 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제도개선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언급했다.
◇정부, 국면 전환 시도냐 엄정한 법 집행이냐=노동계는 이번 조치를 국면 전환용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지는 등 정부·여당이 수세에 몰리자 보수 진영의 결집을 위해 전교조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2010년 1차 시정명령 이후 지난해 9월 재차 시정명령을 내린 뒤 지난 9월 최후통첩을 하기까지 3년여 동안 사실상 용인해 왔던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이제야 박탈하는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해직자의 노조원 자격을 인정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전교조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한 상태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사태를 풀어낼 시간이 얼마든지 충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근혜정부는 국정과제로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 ‘공공갈등 관리시스템 강화’를 내걸었기 때문에 노·정 관계의 복원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정부는 참을 만큼 참았다는 입장이다. 방 장관은 “그동안 정부는 전교조가 교원의 노동단체로서 사회적 책임과 비중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법을 지키면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도했다”고 말했다.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논의하더라도 우선은 현행법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현행법은 오랜 기간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 합의를 거쳐 99년 법제화된 것으로 지켜야 할 당위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사정 대타협 물 건너가나=이번 정부의 조치로 노·정 관계는 당분간 경색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 통상임금 및 장시간 근로관행 개선 등 산적한 노동 현안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풀어간다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협력이 절실하지만 이번 조치로 관계복원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전교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26일부터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한국노총도 오는 11월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전교조의 법외노조화를 강하게 비판하고 교원노조법 개정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이번 정부 조치와 관련해 당장 노사정위 탈퇴를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정부의 전교조 설립 취소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방 장관은 “노사정대타협과 이번 조치는 별도로 생각해 달라”면서도 “(노조활동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노사정 대타협도) 어렵다”며 한계를 토로했다.
Key Word-법외노조(法外勞組)
노조법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조를 말한다. 법외노조가 되면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지 못하며, 단체협약 교섭권, 노조전임자 파견권 등 노조로서의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할 경우, 사용자에게 비용을 주로 원조 받는 경우,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