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사건, 35년만에 다시 맡아 무죄 이끈 변호사

입력 2013-10-24 19:13


[쿠키 사회] “35년 전에도 무죄를 받았어야 했는데 실력 없는 변호사를 만나서 억울한 옥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거 납북어부 간첩 혐의 사건의 변론을 맡아 패소했던 변호사가 35년 만에 재심사건을 다시 맡아 무죄를 이끌어 냈다.

납북어부 박모(77)씨의 재심사건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율곡 이관형(76·사진) 변호사는 24일 박씨의 간첩 혐의가 원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로 선고되자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판사로 공직을 수행하다가 1977년 강원도 강릉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1978년 8월 기소된 박씨의 간첩 혐의 사건은 이 변호사가 개업 초기에 맡은 사건 중 하나였다.

박씨는 1968년 10월 30일 동료 어부 7명과 함께 강원도 고성 대진항을 출항해 동해상에서 명태잡이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다. 이후 북한에서 수용생활을 하다가 7개월여 만인 1969년 5월 29일 국내로 귀환했다. 그는 수용생활을 한 납북어부라는 이유로 1978년 7월 4일 옛 강원도경찰국 수사관들에 의해 연행된 뒤 22일간 구속영장 없이 구금 상태로 조사 받았다. 당시 박씨는 북한의 지령을 받아 고성 현내면 인근 해안 초소 위치, 경비 상태 등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하는 등 간첩고 이웃 주민에게 월북을 권유하거나 북한을 찬양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이씨는 박씨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이씨는 “당시에는 수사기관이 무고한 시민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도 모를 만큼 엄혹한 시절이었다”면서 “경찰이 구타·가혹행위를 했다는 주장을 수차례 했지만 법정에서 입증하지 못해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박씨는 경찰의 구타 가혹행위를 입증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후 박씨와 이씨는 2011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도움으로 얻은 재심기회로 인해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출소 이후 고성을 떠나 충남 홍성에 자리 잡은 박씨는 지난해 5월 강릉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를 찾아와 자신의 변론을 다시 맡아 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이씨는 변론을 거부했다.

이씨는 “나이가 많아서 5년 전부터 재판업무를 보지 않았고 한번 패했던 사건이라 다시 변론을 맡는다는 것이 심적으로 부담돼 처음에는 사양했다”고 말했다.

변론을 고심하던 이씨는 서울의 한 변호사가 ‘이미 사건 변론을 맡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보조 역할로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박씨로부터 지난해 진행된 1심과 항소심 변론의 수임료를 일체 받지 않았다. 이씨는 “오래된 사건이라 수사기록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결국 1600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찾아냈고 이 기록이 경찰이 조작했던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이 진행되는 지난 1년간 노심초사했는데 무죄를 받아 마음이 가볍다”면서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박씨와 ‘호형호제’할 만큼 친한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고법 춘천 제1형사부(오석준 부장판사)는 간첩 등의 혐의로 기소돼 7년을 복역한 박모(76)씨가 청구한 재심사건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에 의해 구속영장 없이 22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한 점이 인정된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공고사실의 증거들은 더는 유지될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춘천=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