向과 香… 죽음을 향한 여행, 향기로 기억되는 사람들
입력 2013-10-24 17:32
향/백가흠/문학과지성사
바람 한 점 없는데 촛불이 꺼질 듯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촛불을 목숨에 비유하자면 그 흔들림은 목숨 자체의 진동일 것이다.
백가흠(40)의 신작 장편 ‘향’(문학과지성사)에서는 그런 진동이 느껴진다. 제목 ‘향(向)’이 의미하는 것은 여행인데, 이 여행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위한 여행이다. 말하자면 인간 죽살이의 향배에 대한 탐구가 이 소설을 밀고 나가는 추동력이지만 실상 우리가 죽음 그 너머의 지형을 탐색할 수단은 없다. 그래서 백가흠은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다. 인간이란 삶과 죽음을 무한히 반복하는 존재, 즉 영원 회귀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다른 삶으로의 이행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가설이 그것. 이를 위해 백가흠은 등장인물들에게 죽었는데도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않는 아주 특별한 역할을 부여한다.
케이는 영국의 한 소도시에서 가족이 모두 불타 죽은 후 축구선수로 자라나지만 이내 부상과 관계부적응 등으로 고향을 떠나온다. 그러던 중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하고 여행지에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호숫가 한쪽에서 작은 점 하나가 안개를 뚫고 나타나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신비로운 풍경에 압도되어, 케이는 흡사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신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멍하니 안개가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고 있던 케이가 천천히 일어섰다. 안개가 서서히 물러나자 한 여자의 모습이 선명해졌다.”(15쪽)
또 다른 주인공 해성은 대학 입학 후 프락치로, 보좌관으로, 다시 국회의원으로 살아가다 비리를 저지르고 떠난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다.
“해성은 줄곧 자신을 주시하는 어떤 시선을 느꼈다. 숲에서 길을 잃고도 무작정 걸어 나갈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나무밖에 없었다. 그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디를 걷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해성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숲은 알고 있는 듯 했다.”(24쪽)
케이가 줄리아를 마치 죽음 너머에서 오는 사람처럼 느낀다는 것, 그리고 숲에서 길을 잃은 해성이 줄곧 자신을 주시하는 제 3의 시선을 느낀다는 것은 현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의 이행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 가능성은 케이가 오남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장할 때 여동생 앨리스와 함께 겪은 기묘한 체험을 회고하는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넌 죽었잖아. 앨리스가 말없이 맑은 미소를 머금으며 케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케이는 앨리스가 다시 살아난 것이 기뻤다. 케이는 앨리스의 손을 잡고 걸으며 길가에 활짝 피어 있는 카밀레 꽃들을 툭툭 건드렸다. 손으로 그것들을 쓸 때마다 국화향이 피어올랐다.”(166쪽)
소설 속 인물들은 여행 중에 각자의 사연으로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들은 모두 앨리스처럼 죽은 뒤에도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등장인물들을 신성한 숲에서 만나게 하는데, 그 신성한 숲이란 현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빠져나가는 가설의 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경계에서는 늘 향기가 난다. 그건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존재에서 풍기는 향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 ‘향’은 ‘향(向)’과 ‘향(香)’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딱히 흠결은 아니지만 소설 곳곳에 얽혀 있는 폭력과 복수와 속죄의 신화소(神話素)라든지, 다양한 인물들이 유영하듯 숲으로 흘러드는 이미지는 자칫 독서의 호흡을 놓치게 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난해한 관념과 이미지를 견뎌내면서 일단 인물들의 지형도를 이해하기만 하면 이 소설이 주는 새로운 감동은 특별하다. 문지 웹진에 원고지 1500장 분량으로 연재했던 작품을 900장으로 압축하면서 얻어낸 서정 소설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 하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