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검찰 갱생의 길
입력 2013-10-24 18:49
“특검 상설화로 막강한 검찰권을 분산하는 것이 검사동일체 원칙 지키는 길”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범죄 저지르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 아니라면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다. 사회 분위기가 검찰을 이웃집 강아지처럼 마구 대하고 걸핏하면 ‘정치 검찰’ 운운하면서 비하하지만 과연 이성에 기초한 지적인지는 곱씹어봐야 한다.
그렇지만 올해의 경우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개인적인 일로 뜻하지 않게 중도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검사들이 유독 자기 파괴적인 일들을 많이 해 체면이 말이 아니다. 채 전 총장 사건의 경우 아직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지만 앞장서 법을 지켜야 할 총수가 혼외자식 문제로 구설에 오른 것은 남우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 서울고·지검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서울지검장과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장의 한판은 약간 차원이 다르다. 한국 검찰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피의자와 사통하거나 거액의 뇌물을 상습적으로 받은 검사들이야 자질 문제로 돌릴 수도 있지만 조직 내에서 나름대로 인정받은 두 칼잡이(검사들이 스스로를 지칭할 때 쓰는 은어)의 공방은 보는 이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핵심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있다. 검사는 검찰사무를 수행하는 독립의 관청이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전국적 통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이 원칙은 검찰청법에 규정돼 있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별로 배부를 것 같지도 않는 계륵 같은 이 원칙을 두고 숱한 논자들이 한마디씩 거들고 있다.
평생을 법공부에만 매달려온 대학 교수를 비롯해 동·서양법제사 연구자 등 수많은 재사들이 개선책을 제시하곤 했지만 뚜렷한 해답은 없었다. 검찰의 핵심 업무인 수사(搜査)는 워낙 광범하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생물 같아 전국적인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공소(公訴)의 제기 및 유지, 재판 진행이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원칙은 존재 가치가 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범죄로 처벌을 다르게 받을 경우 법집행의 생명인 평등의 정신에 충실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이 원칙에 문제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상명하복의 관계에 있는 검사로서는 정의와 진실에 대한 의무보다는 상사의 명령에 구속돼 독립성을 상실하게 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 간부들은 이 원칙을 근거로 부하 검사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해 왔다는 의혹도 끊임없이 받아 왔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바로 그렇다.
이런 문제가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기에 특별검사제도가 오래 전부터 제도적으로 보장돼왔다. 나라의 정보를 오로지하는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은 자주 발생하지도 않는 중차대한 문제라 애초부터 특별검사에게 넘기면 될 일인데도 누구 하나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수사란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알고 시작했지만 이면을 파헤쳐보면 어마어마한 음모와 모략이 숨어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물며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는 대선에서야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비합법적 수단이 한둘이 아니란 점은 누구나 헤아릴 수 있다. 또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이해관계에 얽매인 특정 정파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검찰은 특별검사를 배척하려는 이상한 습관이 있는 듯하다. 특검을 실시하면 검찰권이 무력화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일반 사건은 검사들에게 맡기되 수사 결과에 따라 여야 일방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건은 과감하게 특검에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컨대 특검의 상설화로 막강한 검찰권을 분산해야 한다. 문명사회의 대의명문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주자학적인 세계관이 강한 우리가 조직 내 위계질서를 엄중하게 선언한 검사동일체 원칙을 함부로 무너뜨릴 수는 없다. 예리한 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견고한 칼등이 필요하듯 이번 사건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맑고 투명한 뒷거울이 됐으면 한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