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9. 삶과 문화 : 소명과 자유] ⑤ 훈련 또 훈련!
입력 2013-10-24 17:21
경건 연단하듯 기독교적 삶도 훈련 필요
오늘 강좌는 두 가지 질문에서 시작하려 한다. 첫 질문이다. ‘신앙은 있으나 삶이 공허한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기독교인이 고민하는 주제다. 두 번째 질문이다. ‘기독교 인구는 많은데 왜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지 않는가.’ 기독교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의 고민이다. 첫 질문은 개인의 실존적 질문처럼 보이고, 두 번째 질문은 사회나 문화와 연관된 주제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질문은 동전의 양면처럼 아주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오늘 그 답을 찾아보려 한다.
기독교적 가치관
교인들이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에 빠질 때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기독교인이 맞는가.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명목상 신앙은 있으나, 그 신앙이 삶에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적 체험은 대개 일회적이고, 신비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신앙에서 체험은 중요하다. 그러나 체험의 감동이 길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체험은 흐릿해지고,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 없이 그냥 살아가게 된다.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뜻한다. 신앙은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신앙이 있느냐’라는 질문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질문과 동일한 의미다. 따라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대한 차이다.
성경은 아주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무엇이 옳은지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종교다. 기독교인이라도 기독교적 가치관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비기독교인과 비슷한 삶을 산다. 물질에 대한 태도, 윤리의식, 삶의 목적을 설정하는 것에서 차이가 없다. 자녀에게 성취 위주의 교육을 강요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탈세를 하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얼마의 돈을 주고 해결하는 것까지, 비기독교인과 유사한 행위를 하면서 산다.
한국 개신교 인구를 850만∼1000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기독교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독교 인구는 많으나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으니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상당수 교인은 삶에서 실제적인 판단을 할 때 비기독교인과 다름이 없다. 기독교적 가치관 없이 살면 신앙이 힘을 잃고 삶이 공허해진다. 그러므로 체험이라는 짧은 순간만을 갈구할 것이 아니라 삶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신앙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채워가야 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삶에서 중요한 일이 생길 때 신앙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기독교적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현실에서 신앙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일은 오랜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경건의 연단을 하듯이(딤전 4:7),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신앙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기독교적 가치관은 길러지는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은 한순간에 기적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오직 훈련, 훈련에 의해 가능하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고 경제적인지가 아니라 무엇이 신앙적으로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며 살아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신앙의 실천
신앙생활의 기본을 세 가지, 즉 성경말씀, 기도생활,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신앙은 말씀, 기도, 실천이 함께 이루어질 때 가장 이상적이 된다. 성경공부는 인식론적 이해를 돕고, 기도는 영성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실천이 합쳐질 때 신앙이 확고해진다. 실천이 약하면 신앙이 삶 속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공허해진다. 한국교회는 말씀과 기도는 강조하면서 실천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교인들은 ‘신앙생활’이나 ‘실천’을 모호하게 생각한다. 주일날 교회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여긴다. 실천도 기껏해야 교회 내에서의 봉사 정도로 생각한다.
신앙의 실천은 교회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천의 영역은 가정, 교회, 사회, 자연의 세계 등이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고 사랑의 영이다.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전파하는 모든 행위가 실천이다. 실천은 자신을 넘어 가족과 이웃, 사회와 피조세계에 신앙을 구체화하는 행위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행하는 모든 것이 실천이고,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 모든 곳이 실천의 영역이다.
실천이라고 해서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천은 기도, 재능, 물질, 행동 등을 통해 가능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예를 들어보자.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있다. 하지만 기도가 자신을 넘어서 형제와 이웃을 향할 때 헌신과 실천의 의미를 가진다. ‘재능’을 통한 실천은 아주 다양하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한 모든 봉사가 실천이다. 신앙이 삶의 영역에서 실천으로 이어질 때 신앙이 활기를 가질 뿐 아니라 동시에 기독교 문화가 형성된다.
지금은 시대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실천을 새로운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시대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중요한 실천의 장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좋은 글을 알리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실천이다.
한국 사회에 자살률이 높다. 자살을 종용하는 힘은 어둠의 힘이다. 인터넷상에 자살을 부추기고 생명을 경시하며,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하는 글이 난무한다. 파괴적이고 증오를 일으키는 부정적인 힘이 사회 곳곳에 있다.
여기에 맞서 신앙의 글로 잘못된 가치관을 극복하는 것도 좋은 실천이다. 용기와 희망을 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확산하고,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는 일이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고, 여러 명이 힘을 모아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해도 좋다. 신앙이 실천을 통해 활력을 얻고, 이 사회가 기독교적 가치에 의해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기를 소망한다.
김동건 교수 <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