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우린 왜 공놀이에 열광하는가
입력 2013-10-24 17:23
더 볼/존 폭스/황소자리
아마 24일 밤, 공 하나 때문에 울고 웃은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두산과 삼성 경기를 보면서 말이다. 누군가는 악을 쓰며 발을 구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처음 보는 옆 사람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을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그 작은 공 하나가 뭐라고 그렇게 수천명, 아니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기에 열광하고, 목을 매느냔 말이다.
이 책 역시 이런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더 직접적인 계기는 6월의 어느 날, 저자와 공 던지기를 하던 7세 아들이 불쑥 던진 이 질문이었다. “아빠, 우리는 왜 공놀이를 하나요?”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던 저자는 거기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우리가 하는 경기들은 언제 어디서 시작됐을까’, ‘공을 쫓아 달리는 하찮은 일이 어떻게 500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산업으로 진화했을까’ 등등. 결국 저자는 하버드대 도서관부터 멕시코 밀림과 미국 작은 도시의 리틀 야구장까지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며 답을 찾는다.
먼저 ‘공’ 이야기다. 축구와 테니스는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당시 사람들이 갖고 놀던 공의 실체는 끔찍했다. 돼지 방광이나 캥거루 생식기 등에 풀을 뭉쳐 넣은 것을 끈으로 두른 뒤 천으로 감은 원시적인 형태였으니 말이다. 1493년 그런 공이나마 애지중지 싣고 신대륙 항해에 나섰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와 선원들 앞에 놀라운 풍경이 벌어진다. 현재 아이티인 히스파니올라 섬의 원주민들이 위아래 자유자재로 팔딱거리는 공을 갖고 시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메소아메리카 원주민들은 3500년 전부터 그 지방에서 자생하는 고무를 가공하는 기술을 체득했고, 동시대 유럽인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꿈의 공, ‘고무공’을 갖고 놀았던 것이다.
실제로 멕시코의 아즈텍 문명을 만든 그들의 터전에서는 거대한 경기장이 여러 개 발굴됐다. 그들의 공놀이 ‘울라마’는 그런데 단순 경기가 아니라 종교적 제의였다. 거대한 경기장 옆에 수천 명의 포로와 희생 제물의 해골을 꿰어 나무 선반에 달아놓은 ‘촘판들리’가 발견됐던 것이다. 저자는 직접 멕시코 밀림 코바 지역을 찾아가 인류 대대로 내려오는 공놀이 속에 담긴 의미를 마치 암호 풀듯 해독해나간다. 21세기에 이르러 그렇게 풍부했던 고무가 부족해지면서 울라마 공 하나가 1000달러까지 치솟고, 원주민들의 고대 경기 재현이라는 형식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음도 확인한다.
그렇다면 ‘축구’는 어떻게 시작된 경기일까. 저자는 원시축구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북부 연안 오크니 제도로 향한다.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 때문인데 이야기인즉 이렇다. 오크니의 수도 커크월의 주민들은 스코틀랜드 폭군의 압제에 시달렸다. 주민들은 결국 봉기했고, 한 용감한 청년이 폭군을 잡아오겠다고 나섰다. 그는 폭군을 잡아 목을 자른 뒤 안장에 머리를 매달고 왔는데, 하필 폭군의 이빨에 찔린 부위가 감염되는 바람에 마을 교차로에 도착해 숨을 거둔다. 이에 분통이 터진 주민들은 폭군의 머리를 미친 듯이 발로 찼고, 그때부터 이 지역에선 ‘바’라고 불리는 가죽 공을 차는 전통이 생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무질서한 야만의 영광, 의지의 싸움 속에는 문명과 규범이 자리잡기 전 유럽 전역에서 즐기던 가장 원시적인 축구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리곤 직접 현장에서 벌어지는 커크월 바를 체험한 뒤 고백하는 말. “다 자란 사내들이 계단 밑에서 공 하나를 꺼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합리하고 도통 쓸모없는 짓이었으나 그것은 동시에 형언하기 어려운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저자는 고고학과 인류학, 무엇보다 현장 취재를 통해 야구와 농구, 테니스, 미식축구 등 주요 경기에 탐닉했던 인류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밟으며 그 의미를 찾는다. “축구를 비롯한 각종 경쟁 스포츠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은유, 즉 어느 팀이 선수권을 향한 ‘사냥에 나섰다’거나 ‘굶주려 있다’는 말, 또는 ‘싸운다’거나 ‘영토를 빼앗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경기가 풍요를 비는 의식으로 치러지고 공은 사냥꾼의 사냥감이나 농부의 태양을 상징했던 시절, 즉 승패가 생사와 직결됐던 해묵은 기억의 흔적이다.”(83쪽) 문명화되면서 점잖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가 공놀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원초적인 본성 때문이 아닐까. 김재성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