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기본소득

입력 2013-10-23 18:33

온 나라가 기초연금 공약 수정 논란으로 시끄럽다. 반면 일부 선진국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복지 기획이 펼쳐지고 있다. 스위스 연방의회는 노동 여부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국민 모두에게 기본적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도를 헌법에 명시할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최근 결정했다.

13만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 제안을 낸 스위스 기본소득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기존 사회보장 제도에 통합해 운용하되 18세 이상 성인은 월 2500 스위스프랑(290만원), 청소년 및 노인은 그 4분의 1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스위스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약 8400만원이었다.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는 1940년대 이후 에리히 프롬, 버트런드 러셀, 앙드레 고르 등 철학자들에게서 나왔다. 그렇지만 기본소득 정책이 가장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실험된 나라는 미국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8년 암살당하기 직전 ‘빈자(貧者)들의 행진’을 계획하면서 내세운 핵심 요구는 모든 미국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폴 새뮤얼슨, 제임스 토빈 등 경제학자 1200여명이 대통령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는 공개서한을 백악관에 보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1970년, 1972년 두 차례 기본소득 법안이 입안되어 의회 표결에 부쳐졌지만 부결됐다. 그렇지만 알래스카 주에서는 1982년부터 주내 거주민 모두에게 연간 약 3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은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들린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 말씀과 ‘생산적 복지’가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 진다. 대다수는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일을 안 할 것이고, 따라서 그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독일에서 시민들에게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소감을 물어본 결과 대개 “좋은 아이디어”라면서도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은 직장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80% 이상이었다. 미국에서의 실험 결과도 기본소득제 실시 이후 일을 그만둔 사람은 없었고, 노동시간이 약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지만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시대에 정치인을 포함한 누구도 일자리를 주지 못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다. 기본소득 제도가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 배경이다. 2015년 초반쯤 시행될 스위스 국민투표 결과가 궁금하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