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 들고 튀었지만 4개월 안돼 ‘알거지’… 우리카드 횡령범 10년 만에 체포
입력 2013-10-23 18:24
2003년 12월 김모(41)씨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우리카드 자금부 오모(41) 대리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회삿돈을 주식에 투자해 수익이 생기면 나누자는 것이었다. 오씨는 상사였던 박모(45) 과장을 포섭한 뒤 이듬해 3월 29일까지 인터넷뱅킹으로 회삿돈 400억원을 빼돌려 김씨 명의의 은행계좌 13개에 분산 이체했다.
그러나 일확천금의 꿈은 시작부터 틀어졌다. 김씨 일당은 빼돌린 400억원 중 350여억원을 선물옵션에 투자했지만 채 4개월도 안돼 모두 날렸다. 나머지 돈도 대부분 유흥비와 도박자금으로 탕진했다. 뒷감당이 두려웠던 이들은 2004년 4월 중국으로 도피했다.
목숨 걸고 빼돌린 돈을 날린 터라 불화가 생긴 일당은 서로 연락을 끊었다. 김씨는 주식에 투자하고 남은 돈으로 사업에도 손을 댔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알거지’가 된 그는 2005년 1월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씨 역시 그보다 한 달 전인 2004년 12월 몰래 귀국했다.
김씨와 오씨는 서울 곳곳을 떠돌며 신분 확인이 필요 없는 일터를 전전했다. 공사장 잡역과 분식집 ‘알바’가 대부분이었다. 가족들이 근근이 생활비를 대면서 이들의 도피를 도왔다.
10년간 계속된 김씨의 도피 행각은 “언론에 나왔던 사기범이 동대문시장 근처를 배회한다”는 한 주민의 제보로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한 달 반 동안 동대문시장 근처를 수색해 김씨를 검거했다. 오씨 역시 지난달 2일 서초구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검거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카드사 직원과 공모해 회삿돈 400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로 이들을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