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6년 만에 총파업 “의료공백 현실화”… 발 구르는 환자들
입력 2013-10-23 18:26
23일 오전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병원을 찾은 윤정석(56)씨는 의사를 만나 진료받기 전까지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윤씨는 “7월에 직장암 수술을 받고 일주일에 5번씩 병원에 오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이라며 “항암치료 중인데 파업 때문에 의사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노조가 23일 오전 5시를 기해 6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했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과 강남건강검진센터, 서울대병원이 위탁 경영하고 있는 보라매병원이 파업에 동참했다. 파업 첫날 보라매병원 1·2층은 수납창구를 이용하려는 대기자들로 가득했다. 1층 대기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 한때 1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대기자가 늘면서 점심시간까지 쪼개 진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대병원에서도 환자들의 불편이 이어졌다. 류머티즘 관절염 수술을 받은 전모(75)씨는 파업 중인 노조원들을 향해 “시끄러워서 창구직원 말도 잘 안 들린다”며 소리를 질렀다. 심장질환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러 오는 김홍섭(77)씨는 “평소 30분이면 진료 받고 집에 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벌써 2시간20분이 넘도록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김씨의 아내 이순옥(67)씨도 “진료는 못 받고 이리저리 불려만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본관 로비 중앙을 노조원들이 차지하면서 수납창구 등 대기석이 평소보다 좁아져 방문객들은 내내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노조가 로비 양쪽을 2∼3m 비우고 진행요원들을 통해 환자 통행을 도왔지만 휠체어나 목발을 짚고 가는 사람들이 지날 때마다 출입구 근처에는 혼잡이 빚어졌다. 파업 사실을 모르고 내원한 환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농성장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도 반복됐다.
노조는 파업 중에도 응급의료·중환자치료·응급약제 업무 부서의 경우 평소 인력 규모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파업 때 필수 유지 업무율 기준이 아예 없거나 낮은 콜센터와 환자 이송, 재활의학 업무 등은 차질이 예상된다. 병원 측은 파업에 대비해 부서별 대체인력 계획을 미리 세워뒀다고 밝혔지만 역부족이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업무 공백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할까봐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노사는 의료공공성 강화와 임금 인상 등의 쟁점을 놓고 전날 밤샘 교섭을 벌였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선택진료제 폐지, 임금 총액 13.7% 인상, 비정규직 정규화 및 인력충원, 적정 진료시간 확보 등을 요구했다. 반면 병원 측은 경영여건 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 8월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면서 양측이 마찰을 빚어 왔다.
노조 관계자는 “최근 5년간 실질적으로 수백억원의 흑자 상태인데도 사측이 경영 악화를 핑계로 인건비를 무리하게 감축하고 임금 동결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병원 측은 “노조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했다. 실제로는 적자 상태”라고 반박했다. 양측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터라 파업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007년 파업은 6일간 계속됐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