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원하는 거 아시죠?” “장관님 옆에 우리 과장님 자리도 만들어주세요.”
세계한인입양인대회(IKAA)가 열린 지난 7월 29일 IKAA 조직위원회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로부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행사 직전 갑자기 복지부 장관 옆자리에 마련된 ‘VIP석’에 복지부 과장이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주최 측은 행사장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부랴부랴 명패를 제작했고 결국 IKAA 고문이 앉기로 돼 있던 이 자리는 해당 과장이 차지했다.
복지부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IKAA 관계자는 “복지부가 팀 홈 IKAA 회장의 개회사에서 입양특례법을 언급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아이를 입양시킬 때 반드시 출생신고가 돼 있어야 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때문에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에 의해 버려지는 아기가 급증하자 팀 회장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였다. 그런데도 개정 입양특례법에 우호적인 발언을 요구한 것이다. 팀 회장은 “입양특례법을 다룰 자리가 아니라 입양인들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자리”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축사를 국회의원에게 맡기라는 주문도 있었다고 한다. 축사는 오랜 기간 IKAA를 후원해온 서울관광마케팅의 모린 오크롤리 부사장이 하기로 돼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주최 측에 “장관 다음에 ‘자연인’(일반인)이 축사하는 건…”이라며 “국회의원이 참석해야 행사가 빛난다”고 했다. “격이 맞지 않아 그런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교체하지 않으면) 장관님이 못 오실 수도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주최 측이 “입양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을 초청하고 싶다”며 정중히 거절하자 돌아온 건 ‘부사장’ 직함이라도 수정하라는 요구였다. 결국 오크롤리 부사장은 직함을 ‘부사장 겸 후원회장’으로 바꿔 연설에 나섰다.
세계한인입양인대회는 세계 각지의 한인 입양인과 그 가족 700여명이 3년에 한 번씩 자발적으로 모이는 ‘입양인 축제’다. 순수 민간 행사여서 주로 회원들의 참가비와 민간 기업 후원으로 치러진다. 2009년까지는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이 일부 자금을 지원했고, 2010년부터 입양인 업무가 복지부로 이관돼 복지부에서 참여하게 됐다.
복지부가 이번 행사에 후원한 금액은 불과 1억원이었다. 이마저도 행사 전에 절반, 행사 후에 나머지를 지급했다. 한 IKAA 회원은 “공무원이 직접 ‘우리가 지원하는 것 아시죠’라고 말하니 겁이 덜컥 났다”며 “복지부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면 지원금 절반은 못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복지부는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관이 참석하는 자리여서 행사 내용을 사전에 조율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뤄졌다”며 “입양특례법을 언급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초청 부분은 입양 문제에 관심이 많은 국회의원을 소개해줄 수 있다고 제안한 것이고, 좌석 조정은 장관 옆에 통역 자리를 요구한 것이지 과장 자리를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복지부의 입양인 업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IKAA 회원은 “아동복지정책과에서 해외의 성인 입양가족 관리 업무도 하다 보니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며 “입양인이 모이는 축제에 복지부가 자꾸 정치색을 입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복지부 측은 “IKAA를 비롯해 입양 정책은 복지부의 굉장히 중요한 업무”라며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반박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단독] 돈 준다고… 입양인축제 재뿌린 복지부 甲질
입력 2013-10-24 01:59 수정 2013-10-24 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