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檢 내분사태] ‘바람막이’ 채동욱 총장 낙마에 균열… 국감서 완전결별
입력 2013-10-23 18:03 수정 2013-10-23 22:36
조영곤(55)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53) 여주지청장은 지난 6개월간 돈독한 ‘수사 파트너’였다. 사석에서 “형님” “석열아”라고 부를 정도로 절친한 선후배 사이기도 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지난 6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할 때도 조 지검장은 수사팀 의견을 지지하고, 공소장을 직접 검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국 국정감사장에서 얼굴을 붉히며 설전을 벌였고, 지금은 서로를 향해 ‘인간적 배신감’을 토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 지검장은 지난 4월 10일 서울중앙지검장에 취임했다. 윤 지청장은 같은 달 18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장에 임명됐다. 특별한 근무 인연이 없던 두 사람을 직속 상하관계로 연결시킨 건 채동욱(54) 전 검찰총장이었다. 조 지검장은 채 전 총장과 서울대 법대 77학번 동기로 ‘30년 지기’다. 윤 지청장은 채 전 총장 휘하에서 숱한 비리 사건을 처리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채 전 총장이 지난달 급작스럽게 낙마하면서 균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총장이라는 ‘바람막이’가 사라지자 수사팀은 ‘이번 수사가 힘들어질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고 한다. 윤 지청장은 국감장에 나와 “채 전 총장 퇴임 이후 대검에 보고를 올리면 대부분 법무부로 자동으로 넘어가 장관 재가를 받아 처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조 지검장의 입지 역시 좁아졌다. 수사팀 안팎에서는 “지검장이 변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에 조 지검장은 국감에서 “저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사람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윤 지청장은 지난 15일 밤 국정원 직원 체포·압수수색 보고서를 들고 조 지검장 집을 찾아갔지만, ‘불가’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17일 상부 모르게 영장을 집행했고, 그 결과 직무 배제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당일 저녁 두 사람은 외부에서 맥주를 마시며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이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이 언론에 ‘수사팀이 의도적으로 보고를 누락했다’고 발표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윤 지청장은 이를 ‘수사를 망가뜨리려는 의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보고도 안 하고 공소장 변경도 임의로 신청했다는 식으로만 브리핑이 안 나왔어도 제가 모든 것을 안고 가려고 했다”고 했다.
윤 지청장은 지난 21일 예상을 깨고 국감장에 나타났다. 검찰 지휘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출석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지청장은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 다 말씀드리겠다”며 전국에 생중계되는 자리에서 신랄하게 조 지검장을 몰아붙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얘기도 여과 없이 공개됐다. 조 지검장은 “아끼는 후배가 이렇게 항명으로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윤 지청장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두 사람이 완전히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한 검찰 간부는 “국감이 결정적이었다. 조 지검장으로서는 수사팀을 배려하고, 지원해줬다고 여겼는데 수사를 막는 당사자로 지목된 데 대해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지검장은 “할 말은 있지만, 언론을 통한 진실 공방은 논란을 키울 수 있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