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카페] 제2 동양?… 떠도는 블랙리스트 재계 진땀
입력 2013-10-24 04:02
지난 19일 토요일인데도 동부그룹 경영진은 동부제철 충남 당진공장에 속속 모여들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임원회의를 소집했기 때문이다. 회사 안팎에서 뒤숭숭한 얘기가 떠돌자 김 회장은 직접 임직원을 독려하기 위해 나섰고, 장소도 위기의 진원지로 거론된 동부제철로 잡았다.
1년에 한두 번 발언 내용이 전해질 뿐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아 ‘은둔 경영인’으로 불리는 김 회장은 ‘동부 위기설’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기업은 겉으로 드러난 수치 외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중요한데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며 동양그룹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한마디에 논란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동부그룹처럼 동양그룹 사태 이후 ‘제2 동양그룹 블랙리스트’가 시장에 떠돌면서 재계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거론되는 그룹의 경영진들은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서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23일 “기업어음(CP)을 발행하면 모두 문제 기업으로 받아들인다”며 “지난 18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발언으로 블랙리스트가 점점 더 확대 재생산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가운데 계열 증권사를 통해 CP와 회사채를 조달하는 기업이 4곳 더 있다”고 언급했다. 이 말이 동양그룹처럼 위험한 그룹이 4곳 더 있다는 뜻으로 와전되고 있다. 금감원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서는 철강·건설·중공업·해운 등 유달리 불황의 그림자가 짙은 업종의 기업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에는 각 그룹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딴 ‘3D2H 위기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3D’ 중 하나로 거론되는 한 기업 관계자는 “인수·합병(M&A)을 활발하게 하면서 차입금이 많아졌다는 점 때문에 뜬금없는 재무 위기설이 돌았는데 우리는 유동성도 풍부하고 CP 문제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블랙리스트가 불러올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장기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면 자금 압박이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제2의 동양’으로 낙인찍히면 실제 재무 상황과 무관하게 여신 중단 등 자금난에 직면할 수 있다.
또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의 정상적인 자금 조달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기초체력이나 경쟁력은 탄탄하지만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에 빠진 기업에는 치명상이 될 수 있다. 재계에는 자금난과 투자 위축으로 성장동력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