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박중훈 “안 쓰던 근육 썼을 때의 근육통… 지금 딱 그 느낌”
입력 2013-10-23 17:29
영화배우 박중훈(47)은 스무 살이던 1986년 데뷔작 ‘깜보’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또래 친구들이 만져볼 수 없는 돈을 벌었고 누려보지 못할 인기를 얻었다. 남부러울 게 없는 청춘이었다.
이후 젊은 시절 그의 관심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있었다. 돈을 벌고 인기를 얻고 히트작을 만들고…. 반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자문하는 일은 없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중훈은 “20대의 나는 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대하기 힘든 상대가 누군지 아세요? 예쁘고 젊은 여성이에요. 왜냐면 이런 여성은 자기 자신한테만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화를 해도 상대보다는 자신만 생각하죠. 정말 불편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젊은 시절 제가 딱 그랬던 거 같아요.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이 훨씬 좋아요.”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 이어졌다. “건강만 유지할 수 있다면 나이 드는 건 축복인 거 같다” “내게 최대 형벌은 타임머신을 타고 20대로 돌아가라는 거다” “곧 50대가 된다는 사실이 정말 즐겁다”….
박중훈이 감독을 맡고 시나리오까지 직접 쓴 영화 ‘톱스타’(24일 개봉)엔 이러한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녹아 있다. 작품엔 매니저 출신 무명 배우에서 스타로 성장해가는 태식(엄태웅), 거만한 톱스타 원준(김민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제작자 미나(소이현)가 등장한다. 이들 중 주인공 태식은 순수한 청년에서 야욕만 가득한 안하무인 스타로 변해가는 인물이다.
“나이가 드니 자꾸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인기는 예전 같지 않고 부끄러웠던 시절도 생각나고…. 특히 영화 ‘체포왕’(2011)을 찍으면서 더 이상 제 연기가 새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감정들이 모여 (감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계기가 만들어진 거 같아요.”
베테랑 배우 박중훈이 ‘신인’ 감독이 돼 뛰어든 영화판은 낯설었다. 시나리오 집필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캐스팅 작업도 난항을 겪었다. 개봉을 앞둔 현재 심경 역시 지금까지 못 느껴본 감정이다. 그는 “요즘 너무 불안하다”며 “초조해서 잠이 잘 안 온다”고 거듭 말했다.
“시나리오 쓸 땐 매일 시커먼 절벽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 투자는 어디서 받을지, 캐스팅은 어떻게 할지도 걱정이었죠. 평생 (출연) 의뢰를 받고, 때론 거절하면서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반대 입장이 돼 누군가에게 출연이나 투자를 부탁하는 위치에 서게 되니 모든 게 막막하더라고요.”
캐스팅 작업을 진행할 때 태식 역엔 원래 20대 배우들 이름이 거론됐다. 어리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태식 역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나이가 어린 톱스타들의 경우 직접 만나는 것도, 출연에 응해달라는 전화 한 통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20대는 아니지만 폭넓은 감정을 성숙하게 표현해내는 엄태웅이 태식 역에 낙점됐다.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한 저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니 누가 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겠어요? 거기다 저는 신인 감독이고 영화가 성공해도 포커스는 출연 배우보단 저한테 맞춰지겠죠. 출연 제의를 거절한 후배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섭섭하긴 하더라고요(웃음).”
27년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영화 인생을 만들어온 박중훈은 ‘톱스타’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카메라 뒤에 앉아 영화의 탄생 과정을 지켜봤다. 감독으로서 촬영을 진두지휘하며 느낀 점은 무엇일까.
“영화판을 법정에 비유한다면 이번에 저는 처음으로 판사 자리에 앉아본 거죠. 안 쓰던 근육을 썼을 때 근육통을 느끼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제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참 낯설어요. 앞으로 감독을 계속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감독은 영화가 상업적 성과를 얻어야 계속 할 수 있는 거니까(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