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사이버司 댓글 의혹, 검찰 내분에도 朴 대통령, 민생 강조하면서 현안엔 “…”
입력 2013-10-22 18:58 수정 2013-10-23 01:45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국가정보원, 국군 사이버사령부 정치댓글 의혹 사건과 검찰 내분 사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여야가 합의해서 기업들이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와 법규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국정감사가 여야 간 충돌의 장으로 가는 상황을 에둘러 비판했다.
국정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윤석열 여주지청장(전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이 전날 국감에서 ‘수사 외압’을 주장해 파장이 컸던 만큼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언급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침묵’했고 경제 활성화와 민생 등만 강조했다.
침묵을 종종 메시지로 활용해 왔던 박 대통령은 이번에도 ‘기존 입장과 변한 게 없다’는 의미와 함께 정치적 공방에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댓글 논란은 어디까지나 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고 본인은 대선 과정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는 무언의 항변이다. 또 국회 소관인 국감에서 터진 이슈는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하고 검찰과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경제 활성화와 관련된 각종 법안들을 꼭 통과시켜주실 것을 정치권에 당부 드린다”고 호소했다. 나아가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자신들이 법과 정치로 해결하지 않고 민생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고도 했다. 여야의 정치적 공방을 소모적 논쟁으로 보고 있으며 민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적 기류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침묵이 장기적으로는 경제 활성화를 포함한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민생입법에는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고 국정과제 추진에는 국민 다수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최근의 사태는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지난 대선의 공정성과 관련해 제기됐던 어떤 의혹보다도 파급력이 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침묵만 할 경우 논란은 가열되고 국민의 신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무대응’ 또는 ‘마이 웨이’ 기조로 일관했지만 대선 공정성 논란이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커지기만 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줄줄이 확인되고 있는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침묵은 대통령으로서의 무책임한 태도이며 국정 혼란에 대한 방치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알 수 없는 침묵이 책임 인정의 유구무언(有口無言)인지, 무책임한 방치인지 궁금하고 최악의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해법을 듣고 싶어 한다. 침묵은 깨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